나는 참 빛 장사 (요약)

세상에서 가장 보람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이다

이무경 목사
이무경 목사 (경서지방 · 새생명교회 원로)

6.25 전쟁의 포화 속에 3도 이상의 화상을 입었다. 가까스로 죽음의 고비를 넘겼지만 희망보다 절망이 더 컸다. 눈물의 골짜기 한 가운데서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평생 목사로 사역했다. 48년 간 서울과 경기 지역 6개 교회에서 목회했다. 2012년 은퇴 후 목회 현장을 떠났지만 목사로서의 사명과 책임감은 여전히 내 삶의 중심에 있다. 

꿈이 없는 소년 
초등학교 4학년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각자 소원과 꿈을 말하라고 하셨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쌀밥이나 실컷 먹기를 바랐던 시절에 장래 꿈을 얘기 하라니 난감했다. 당황한 나는 얼떨결에 “아나운서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 작정한 말도, 준비한 말도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성령께서 말씀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아나운서처럼 세상에 소식을 전하는 자 그것도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었으니 말이다. 꿈이 없던 소년은 수 년 후 ‘영적 아나운서’가 되었다. 

세상의 소금과 빛
20대 신학생 시절부터 노방전도와 축호전도 뿐만 아니라 열차와 버스, 전차에서 복음을 전했다. 1분 정도 간단한 설교를 하고 찬송을 부른 후 전도지를 나누어 주었다. 어떤 이들은 외면하고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이들은 손가락질 했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복음의 씨앗이 자라 결실할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전도지를 받고는 교회 간 지가 하도 오래 되어 다니던 교회에서 내 이름도 지워졌을 것이라 말하는 이가 있었다.   “물론 그럴 겁니다. 그러나 놀라지 마세요. 하나님의 생명책에는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이 병들었다고 사망 신고를 하며 자녀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사망 신고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눈물을 글썽이던 그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 할 때 느꼈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너희는 세상에 소금과 빛이라”(마5:13~14)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쓰라” (딤후 4:2) 나는 정말 말씀대로 살고 싶었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전심을 다했다.  

 낚시 도구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가복음 1:17) 

넓은 바다에 많은 물고기가 있다 하여도 배와 그물이 없다면 육지로 끌어 올릴 수 없다. 넓은 세상에 죽어가는 영혼을 생명의 땅으로 끌어 올릴 그물은 무엇일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나의 그물은 무엇일까? 기도했다. 그 기도의 결과물이 비영리 선교회인 ‘기독교전도협회’이다. 1997년 창립하여 다양한 전도지 보급 사역을 했다. 

13년간 ‘기독교전도협회’에서 발행한 전도지는 약 3,500만 장으로 한국 뿐 아니라 미국까지 건너가 세상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끌어올리는 튼튼한 그물이 되어주었다.

예수님의 DNA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9)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기도했다. 

하나님은 빌립보서 2장 5절을 통하여 답해 주셨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 가능하다. 

대구에서 영남 신학교를 다닐 때였다. 학교는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보통은 버스로 이동했는데 그날은 걸어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찬송가 285장을 부르며 걷고 있는데 시내 버스 한 대가 흙먼지를 날리며 지나갔다. 시야를 가린 먼지를 손으로 휘젓는데 버스 바닥에 끌려 가는 무언가가 보였다. 사람이었다! 버스에서 매달려 이리저리 바닥에 부딪히며 끌려가고 있었다. 

당장 버스를 세워야 했다.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내던지고 달리는 버스에 뛰어들었다. 양팔을 벌리고 앞을 막아 섰다. 버스가 급정거 했고 기사가 쌍욕을 퍼부었다. 말문이 막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버스 기사와 안내양이 뒤쪽으로 갔다. 버스에 매달린 채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끌려 온 여자의 모습은 참혹했다. 

버스 기사와 차장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승객들은 비명을 질렀다.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곧 응급차가 왔고 다행히도 여자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후일,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달리는 버스를 막을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막을 생각도, 막아야겠다는 의지도, 막을 수 있다는 용기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이 튕겨나갔다.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의 마음이, 예수님의 DNA가 나를 이끌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식은 땀이 난다. 

사랑의 빚진 자
나는 강도 만난 사람을 지나치지 않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기를 기도했다. 내 필요가 급해서 다른 사람의 필요를 외면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되지 않기를 원했다. 새생명 교회에 시무 할 때다. 새벽 예배 후 공원 산책을 하는데 벤치에 홀로 앉아 계신 할아버지가 보였다. 그 모습이 쓸쓸하고 외로웠다. 

“할아버지,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했다. 

할버지는 아주 퉁명스럽게 대뜸 “나 도와 주는 분도 있소?” 싸늘하게 답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할아버지가 나를 보자 말씀하셨다. “그래, 날 도와주실 수 있소?”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 답했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11년 간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는 중증지체장애를 가지고 있어 일상 생활에 어려움이 많았다. 나는 그 분의 손발이 되어 드렸다. 마트에 모시고 가 함께 장을 보고, 은행 업무를 도와 드리고, 이발소에 모셔다 드리고, 전동 휠체어가 고장 나면 수리를 해드렸다. 11년을 함께 하니 가족이 되었다. 지나가시던 할머니가 “효자 아드님을 두셨네요.” 하셨다.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시며 “그럼요, 효자 아들이고 말고요.” 대답하시는데 마음이 울컥하기도 했다. 예수 안믿는다고 큰소리 치던 할아버지는 어느새 예배의 자리 맨 앞에 앉아 계셨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할아버지, 저도 이제 정년으로 곧 은퇴하고 화성시 병점으로 이사 갑니다.” 인사를 드렸더니 “그럼 난 이제 어떻게 살지요?” 하시며 눈물을 훔치셨다. 그리고 보름 후 천국으로 떠나셨다. 가끔 하늘을 보면 “나 한테 예수 전하지 마쇼!” 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지금은 예수님과 함께 편히 계시리라!

나는 지금도 꿈꾼다
54년 전 용인에서 결혼식을 마친 후 버스를 타고 신혼여행지로 갈 때도 전도지를 승객들에게 나누어 주며 복음을 전했다. 그때 마침 동승한 사촌 동생이 “형님, 오늘만은 제발 참으시지요”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복음의 빛을 전하는 참 빛 장사이기 때문에 이 좋은 날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답했다. 사촌 동생의 황당해 하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는 내 젊음도 지나가고 나이도 많고 건강도 좋지 않지만 전도지를 제작해 보급한다. 원로 목사지만 수원 성균대역 근처에 2015년에 성목교회를 개척하고 7년 째 협력 봉사하고 있다. 

어느 날 목사와 장로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한 장로가 “이무경 목사님이 나를 전도해 내가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되었으며 이제는 우리 가족 30여 명이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라고 고백했다. 그 순간의 감동과 기쁨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내가 숨을 쉬는 한 복음 전도는 계속 될 것이다. 내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복음 전도의 도구가 되길 기도한다.  

내가 입을 벌려서 전도를 못한다 해도 내가 만든 전도지가 여기 저기서 전도할 것이며 또한 내가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해도 숨 쉬며 살아있는 동안은 내가 전도 대상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날마다 지금처럼 기도하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보람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이런 사람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이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람이라고 본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