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의 노래’ 가사 당선과 총회장으로 활동

박석근 목사는 자주 틈을 내어 이탈교회들을 방문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말하고 함께 기도하고 계속 설득했다. 그 결과 총회적으로 1965년 제1차 합동 시 129개 교회가 예성에서 돌아왔는데 그 중 경북지방회의 14개 교회가 합동에 가담한 것은 박목사의 노력의 결과였다.

그가 8번이나 지방회장으로 봉사하므로 총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의 이름이 더 크게 알려진 것은 교단 창립 60주년인 1967년을 앞두고 배가운동에 대한 가사 공모가 있었다. 박 목사는 교회 부흥은 배가운동이라고 생각을 했기에 응모해 당선되었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배가의 노래(작사 박석근, 곡 찬송가 350장) 1. 삼천만을 구하려는 생명의 복음, 성결교회 세운지도 벌써 육십 년, 십이만 명 성도들의 감격도 크다, 불러보세! 배-가의 나팔.

후렴: 높이 외쳐라 우리의 복음, 높이 외쳐라 배가의 운동 중생 성결 신유 재림 사중복음을, 죽을 영혼 살-리기 위해(이하 생략).

이 ‘배가의 노래’ 가사는 모두 3절이었는데, 그 내용은 ‘오늘도 죽어가는 저 많은 영혼들에 사중복음을 외치고, 신자 배가운동을 통해 속히 구원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곡은 당시 찬송가의 ’우리들의 싸울 것은 군대 아니요‘의 곡조로 채택되어, 전국교회에서 주일마다 불렀다.

교단 60주년 배가운동은 각 교회적으로 실행되어 67년 한 해 동안 전국교회의 결심자가 2만 2,345명, 구도자가 1만 4,226명으로 집계되어 60주년 기념 배가운동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 배경에는 성결복음 배가확장을 제안한 박석근 목사의 노래 가사와 기도가 있었다.

마침내 그는 1968년 총회에서 부총회장에 당선되었고, 이듬해 제24회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당선되어 교단을 사랑하는 그의 뜻을 더욱 크게 펼칠 수 있었다. 필자는 제24회 총회에서 목사안수 받았는데, 증경총회장들의 안수에서 박석근 총회장께 안수기도를 받아 잊지 못한다.

제24회 총회는 교단 성장에 획기적인 안건으로 ‘교단 자립대책위원회’가 결의되었다. 이는 경북, 경기지방회가 공동으로 제안한 것으로 그 주동은 박석근 경북지방회장이었다. 내용은 총 1억 원을 모금하는 것으로, 모금액 중 1/3은 인재양성을 위한 서울신학대학 자립기금으로, 그리고 2/3는 교회개척, 선교와 교육, 기관지 활천 발간 등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조직을 위해 박 총회장은 전국적으로 장로들을 적극 활용하자고 주장하여 지방마다 유력한 장로 20명을 임명하고, 교단 70주년까지 8년 동안 모금 활동을 추진했다. 그는 1972년에 위원장으로 수고하다가 실효를 위해 명칭을 ‘부흥대책위원회’로 변경하면서 위원장도 한국은행의 간부로 은퇴한 조인정 장로를 임명해 전국교회를 순회하여 모금토록 하게 했다.

마침내 1977년 4월에 해산된 ‘부흥대책위원회’의 결과는 총모금액 9,600만 원으로 1억 원 목표엔 미달했으나 거의 육박했다. 이 금액은 당시 총회본부가 강남으로 이전하기 위한 대지 확보에 전액 전용하기로 총회에서 결의하여 오늘의 성결회관 건립의 종잣돈이 되었다.

그는 65세를 넘기자 몸에 각종 질병이 찾아와 병원을 자주 찾으면서 의욕을 차츰 상실해갔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작은 내분이 생겨도 이를 해결하기 싫어졌다. 그는 회복을 위해 기도했지만 좋아지지 않아 교회에 폐가 되지 않기 위해 67세에 사임할 것을 결심했다.

그래서 평소 아끼던 신일웅 목사에게 후임을 부탁했다. 신 목사는 김천남산교회를 크게 부흥시키던 중 존경하는 박 목사의 청을 받아 1980년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원로목사로 잘 모셨다. 그 후 박 목사는 6남매에 따른 가족을 남기고 1989년 10월 4일 76세로 소천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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