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 존재이다. 그런데 사랑에 빠지는 순간만큼은 이타적이 된다. 사랑하는 순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 사랑에 빠지면 자신의 것과 사랑하는 사람의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자기의 가진 것을 다 퍼주지만,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온전히 상대를 위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상태가 바로 사랑이다. 인간의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행위는 사랑인 것이다. 사랑은 모든 계산을 초월한다. 눈멀게 한다. 

요셉은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였다. 그래서 주의 사자가 현몽할 때 마리아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임신한 것이라는 말씀이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거룩한 순종을 하였다. 임신한 마리아를 데려올 때도, 아이를 낳을 때도,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 할 때 애굽으로 피난할 때도 돕는 자였고, 다시 돌아왔을 때도 그랬다. 

하나님을 사랑하였기에 주인공이 아닌 철저한 엑스트라였다. 자기 이름 없애는 데는 따라갈 사람이 없다. 요셉은 행동할 뿐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매우 구체적인 현실 가운데서 묵묵히 부르심에 순종한다. 나를 나타내지 않고 예수만 나타냈다. 내가 나타나면 나도 죽고 예수님도 죽는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예수님도 살고 나도 산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순종으로 의로운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 가장 거룩한 조연으로 성경에 기록되었다. 남편으로서 사랑을 뛰어넘어 시대를 밝히려는 거룩한 조연이 없었다면 예수님은 오시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비극은 교회가 거룩함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체질이 허약해졌고, 이로 인해 교회가 세상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영적으로 너무나 가난하다. 기독교 가치관이 세상 속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역으로 세상 가치관이 교회로 흘러들고 있다. 

성탄절이 다가왔다.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고, 크리스마스 캐럴 곡이 울려 퍼진다. 온 인류의 구주시요 평화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날이기에 기쁜 성탄절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성탄절 장식을 하고 성탄절 행사를 하고 카드를 보내고, 선물도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를 거부할 만큼 거룩한 예수님이 주인공이 아니라 들러리라는 느낌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이 되면 축하해주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돈 쓰고 시간 내면서 마음이 더 설렌다. 성탄절이 훨씬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남편이나 아내, 부모님과 자녀들 생일만큼도 챙기거나 준비하지 못한다. 이유는 세상 가치관에 깊이 함몰되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성탄의 거룩을 버렸기 때문이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주장 손흥민 선수는 한 골도 넣지 못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골의 뒤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6강전을 결정짓는 포르투갈전에서 황희찬 선수의 결승골에는 손흥민 선수의 어시스트가 있었다. 그가 직접 넣은 골이 없다고 해서 축구선수로서의 그의 기량과 가치를 폄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득점을 얻는 화려한 순간에는 분명 조연이었지만 경기 전체의 흐름에서는 중요한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성탄절은 주인공이 분명히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그렇게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올 수 있도록 위대한 헌신을 했던 거룩한 조연이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요셉을 본받기를 소망해 본다. 성탄절의 기쁨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거룩한 조연으로 가장 빛난 성탄절을 준비해 보자.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해 주신다. 그때 기쁨은 선물로 오는 것이다. 

성탄절의 기쁨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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