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에 아름다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라이브로 부르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들어보았던 노래의 가사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진성이라는 가수의 ‘안동역에서’라는 노래입니다.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안타까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한낱 유행가의 가사가 목회자의 마음과 주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던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와야 할 성도님들이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코로나는 우리들의 예배를 무너지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은 길이십니다.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예수님은 성경, 진리의 말씀을 다 이루신 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시고, 우리에게 그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영생을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코로나로 인하여 또 다른 이유로 인하여 주님께 나아올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 되셨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젖 뗄 때까지만 키우고 성전에 맡겼습니다. 얼마나 귀한 아들이었습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귀한 아들을 한나는 어떻게 성소에 맡길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한나의 주인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온전한 주인이 되셔야만이 가능합니다.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나의 생각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치 하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로 인해서 사무엘은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나와 같이 나의 가장 귀한 것들 주님께 드릴 때 하나님의 복이 온 집안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었던 한나와는 반대의 인물들도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등장합니다. 그중 하와가 선악과를 보며 마음에 생각합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 3:6)

이는 누구나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고, 매력적 유혹입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유혹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누가 주인이냐는 것입니다.

하와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주인이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신이 보기에 좋은 것 그 실과를 따먹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어 그도 먹게 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자신이 주인이 됨으로써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그 결과는 인생의 흥왕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파국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주께 드려야 합니다. 바울의 말처럼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주인 된 죄(예수 믿지 않은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 되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음을 기억하시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의 왕이심을 고백하셔야 합니다.

주님께로 돌아오십시오. 내가 주인 된 삶에서 떠나 주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지금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께로 돌아오십시오. 그리하여 주 안에서 승리하시고 온전한 구원을 누리시며 하나님의 복으로 가득한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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