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합니다. 그중에는 처음 잠깐 만났다가 헤어지는 사람도 있고, 매일 계속해서 얼굴을 보면서 생활하는 가족이나 직장 동료도 있게 마련입니다. 

친구 중에도 말로만 친구인 경우가 있는가하면 어릴 적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죽마고우(竹馬故友)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또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더 낫다’는 말도 있습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창 1:27)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구상 모든 사람의 얼굴 모양새는 같지 않습니다. 

동양인·서양인, 백인·흑인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민족끼리도 그 모습이 비슷할 수는 있어도 똑같은 경우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도 언뜻 보기에는 똑같아 보여도 자세히 뜯어보면 분명히 다른 면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얼굴 표정 또한 사람마다 천태만상임을 보게 됩니다. 늘 밝은 표정에 미소가 넘치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항상 우울하고 화가 잔뜩 난 모습을 지닌 사람도 있습니다.

‘출세를 하려면 첫 인상이 좋아야 한다’고 합니다. 노래가사 중에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만큼 얼굴이 나타내는 절절한 친근감을 묘사한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얼굴 표정의 밝고 어둠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웃음을 가득 머금은 소유자는 부모님께 감사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부류의 사람들은 부모님을 원망해서 될 일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인위적으로 연습을 해서라도 좋은 인상을 갖도록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적령기가 되어 결혼하기 전에 맞선을 보고 상견례를 하는 것, 취업 전에 면접과정이 필수인 것은 그만큼 얼굴모습의 인상이 중요한 절차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은 성형수술을 해서 딴 얼굴을 만들기도 하는데, 과연 정상적인 방법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의 얼굴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얼굴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연령대를 짐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실제로 나이가 꽤 들었는데도 몇십 년은 더 젊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반대로 젊은 나이인데도 훨씬 더 늙어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실제 나이보다 더 젊어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 사고방식대로 살면 그만큼 더 젊어지고, 반대로 나이에 비해 늙은이 행세를 하면 또 그만큼 더 늙어 보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본래 모습을 정확히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삽화에 실린 표정으로 보아, 인자한 분이었을 것으로 추측만 할 따름이지요. 예수님의 33년 간의 행적을 보면 그 마음과 생각은 한없이 너그럽고 자상한 분이었을 것으로 짐작하게 됩니다.

“그 사람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정해진 인품(人品)이 있습니다. 하지만 외모보다도 내면의 마음가짐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마음이 올바르면 얼굴표정도 그만큼 밝아 보일 것입니다.

우리의 겉모습을 고치려고 애쓰기보다는 예수님의 참 모습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곱든 밉든 우리의 본래 모습이 어떠하더라도 사소한 일로 화를 내고 쓸데없이 고운 얼굴에 ‘인상 쓰고 짜증내는 일’은 없어야 되겠습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