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초청, “함께 걷지 않을래?”

복음이란 단어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기쁜 소식’입니다. 무엇이 기쁜 소식일까요? 그것은 자격 없고, 내세울 것 없으며, 감히 하나님께 나갈 수 없는 나에게, 먼저 찾아오시고, 일방적으로 회복의 자리로 초청해 주시는 사건이 기쁜 소식의 핵심입니다. 

창세기 17장 1절에 보면 이와 비슷한 사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낳은 후, 거의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나님과 교제가 없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사래를 통하여 아들을 주시기를 원하였지만, 아브라함은 하갈을 통하여 낳은 아들에게 만족하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아내 사래의 나이가 너무 들었고, 또 지금까지 기다렸어도 아무런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그러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에 취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지 못한 것은 아브라함의 잘못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7장에 보니, 하나님께서 그러한 아브라함에게 일방적으로 찾아가십니다. 다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찾아가셔서 ‘나와 함께 걷자’고 초청해 주십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신앙이 잠들어 있는 아브라함을 꾸짖으시고, 하나님의 언약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브라함을 훈계하셔야 옳을 듯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전혀 뜻밖의 초청을 하고 계십니다. 17장 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 구절에서 ‘함께 걷자’는 하나님의 초청이 어디에 있을까요? 이 구절에서 “행하다”라고 번역된 단어가 히브리어로는 ’히트할레이크‘라는 단어인데, ’산책하다‘ ’걷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 앞에서 행하여”라고 표현하신 구절의 의미가 하나님과 함께 걷자는 초청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다”라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 걷다”라는 의미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초청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하였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관계가 깨어진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기에 더이상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을 수도 없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인간에게 있는 죄는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키는 요소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셔야 할까요? 구원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다시금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 주셔야 합니다. 죄 된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한 전력이 있기에, 또 다시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으며, 하나님과 별개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한 인간의 모습을 보시며 굳이 꾸짖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죄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훈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10년 이상 신앙이 잠들어 있었던 아브라함을 찾아가셔서 꾸짖거나 훈계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초청을 해 주셨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오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 걷지 않을래?”라는 하나님의 초청은 하나님의 관계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며 초청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을 의미하며,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하나님의 이 멋진 초대에 응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 말씀이 비록 신약성서에 기록되어 있지만, 죄인 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은 동일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위하여 어떠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즉 아브라함처럼 이스마엘에 취하여 신앙이 잠정적으로 휴업상태에 있었을 때에,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을 찾아가셔서 “함께 걷지 않을래?”라고 초대하시며 당신과의 관계 안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 것이지요! 할렐루야!

이러한 멋진 방법을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전도할 때 사용하면 더 효율적으로 복음전도를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초청은 지금 나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초청입니다.

나에게 초청하고 계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나와 함께 걷지 않을래?” 단풍이 붉어져 너무 아름다워져 가는 이 시간, 하나님과 함께 걷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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