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맡으면 ‘성공’ … 만능 일꾼
어린이집 원장 경험 살려
교회 영·유아부 부흥 이끌어
사업가로 변신도 성공적

“때로는 버거울 때도 있지요. 그래도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주어진 일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말씀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포기했을 거에요.”

오랫동안 어린이집 원장으로 일하면서 존경받던 교육자, 주어진 교회 봉사를 완벽하게 해내는 똑순이, 현재는 떡볶이 매장을 운영하며 연매출 수억 원을 상회하는 사업가 홍민식 권사(한빛교회‧사진)의 고백이다.

떡볶이전문점 레드175 대치역점 점장인 홍민식 권사의 매장은 떡볶이 가게에서 보기 드물게 브레이크 타임을 가져야 할 정도로 장사가 잘되기로 유명한 곳이다. 유동인구도 적고 위치도 좋은 편은 아니지만 매출은 늘 동종업계에서 최상위권이다. 프랜차이즈 업체로 남들과 똑같은 재료를 공급받아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데 매출은 점점 늘고 있다.

주변의 다른 업체에서 개발한 메뉴가 큰 호응을 얻거나 코로나 초창기에는 위기도 겪었지만 월 1,000만 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비롯해 인건비 등을 지급하지 못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꾸준히 순이익이 늘어나고 있어 세무사 사무실에서 “매출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조언할 정도이다. 이에 대해 홍 권사는 “떡볶이 가게를 하게된 것부터 매장 관리, 사업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고 고백했다.

사실 홍민식 권사는 오랫동안 어린이집 원장으로 일했던 교육자였다. 또 오랫동안 영·유아부 부장을 맡으며 부서부흥을 이끄는 등 교회에서는 똑순이로 통했다. 실제로 그가 처음 영유아부를 맡았을 때 해당 부서는 다른 봉사자들에게 기피대상이었다. 예배실이 지하에 위치한 데다가 활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봉사자들이 기피하니 부서가 부흥할리 없었다.

그러나 홍 권사가 부장을 맡은 후 영유아부에 활력이 생겼다. 마침 어린이 전문 사역기관의 목회자가 부임했고, 부장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2배 이상 부흥한 것이다. 가장 먼저 예배실을 밝게 꾸몄다. 여기에 틈틈이 교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 회식을 하고 교사 기도회도 열었다.

부서행사가 있을 때면 어린이집에서 사용 중인 물품을 가져다가 치르니 학부모들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봉사자들도 높은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 무엇이든지 맡은 일은 똑 부러지게 해내는 홍 권사 특유의 성격이 봉사에서도 발휘한 것이다. 여기에 자립못한 작은교회를 돕는 일에 헌금도 하고 월드비전과 극동방송 후원도 꾸준히 감당했다.

이런 그가 떡볶이 사업을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었다. 당시 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바꾸기 위해 잠깐 쉬던 중 본사 대표였던 오빠가 새로 생기는 대치역점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해 돕다가 운영까지 맡게된 것이다. 초창기에는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심했다. 평생 교육자로 살았던 사람에게 사업은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여기에 무엇이든 똑부러지게 하는 홍 권사의 성격상 과로로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도 많았다. 실제로 초창기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주변의 우려를 극복하고 가게를 4년 만에 매출 최상위 매장으로 만들었다.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던 코로나 기간동안 오히려 배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순이익은 더 높아졌다.

비결은 모든 일에 주께 하듯이 최선을 다하는 것과 직원들과의 호흡이었다. 특히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직원들은 그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는 “사실 가게를 시작하면서 힘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늘 말씀에 대한 사모함을 갖고 버티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며 “영유아부에서 함께 봉사했던 교인들도 함께 일하면서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고 고백했다.

가게가 조금 더 안정되게 자리를 잡으면 봉사의 폭도 넓힐 계획이다. 홍민식 권사는 “돈을 버는 것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삶의 터전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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