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은 인간일 뿐

김광남 목사가 따라간 곳은 다다미 백여 장 깔만한 넓은 유도 훈련장이었다. 검사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검찰은 김 목사를 날카로운 눈초리로 관찰해가면서 담배를 태우기 시작한다.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운 후 검사가 김 목사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천황폐하가 높으냐? 예수가 높으냐? 천황폐하의 엄명이다. 천황폐하에게 참배하라.”

김 목사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천황은 인간이다. 우리 기독교는 오직 예수에게 예배드린다. 천황은 인간이기 때문에 참배 대상이 될 수 없다.” 

김 목사가 단호히 거절하는 순간, 눈에서 번쩍 섬광이 일어난다. 검사의 고함이 넓은 유도장에 찌렁찌렁 울렸다. 유도장에 있는 사람들이 놀라 동작을 멈출 만큼 고함을 지르며 주먹세례를 퍼붓는다.

김 목사의 해골처럼 깡마른 뺨을 불이 나도록 후려쳤다. 철썩철썩 넓은 유도장에 메아리쳤다. 검사는 치를 떨며 김 목사의 머리카락을 바싹 움켜쥐고 바닥에 처박으며 “이 조센징 놈아! 감히 천황폐하를… ”

김 목사는 모진 고문을 받고 비틀거리며 유치장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진다. 예수를 믿었다는 이유로 매를 맞은 감사와 기쁨의 눈물이었다. ‘내 죄명은 일본의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였구나!’ 

당시 일본은 천황을 현신인(現神人)이라 하여 신격화시켜 처처에 신전(신사)을 짓고 1억 민초(民草)에게 천황 참배를 강요했다. 가정마다 일본의 국신 천조대신(天照大神/ 아마데라스 오가미)의 위패를 안치한 소형신사인 가마다나를 설치하여 참배했다.

그들은 천황을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래에 있다고 하는 주장은 천황을 모독하는 처사로 단정하고 형벌을 가했다. 또한 일본기독교 안에 적국의 첩자가 있다고 유포했다. 일본국민은 그 유포를 믿었고 헌병과 경찰은 교회에 탄압을 가했다.

일본국가는 교회를 전쟁협력 기구로 강제했다. 교단본부는 전시사무소로 발족시키고 예배당은 피난소, 구호소, 배급소 등으로 사용하였다.

교회가 전쟁 도의 고조, 필승신념 앙양, 전승기도회, 목회자 군사훈련, 지원병, 일본 천황의 처소를 향한 궁성요배, 점령지와 식민지역 선무공작 활동 등 전쟁협력 기관으로 이용했다.        

일본군부는 옛날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 흑역사의 전철을 밟았다. 로마 황제가 유일한 신이기 때문에, 그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가이사 신상에 절하라고 강요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이사냐? 그리스도냐? 생사기로 순간에 주저 없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고 고백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로마 제국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들의 죄는 가이사 위에 예수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김 목사는 그의 믿음대로 인간 천황의 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두었다. 이것이 그의 일본의 국법에 저촉된 죄명이었다. 그는 그 후부터 유치장 생활이 아주 평안해졌다. 이제는 투옥된 까닭을 알았고 각오도 섰기 때문이었다.

그 밖에 추가된 죄목은 교회를 통한 조선독립 운동혐의, OMS와 연계된 미국의 간첩혐의, 재림설교로 국민 미혹해 국가 체제전복 계획 등으로 예심이 계속되는 동안에, 경찰이 정회장(町會長)을 통해 그의 죄상을 주민에게 전해, 일본국가에 대한 불경 범법자로 취급되었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최후를 맞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이때 가족은 그를 감옥에 둔 채 일본을 떠나버려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었다. 아마 이미 죽을 사람으로 알고 생각을 달리했을 것이라고 상상도 해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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