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소그룹모임 시간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물에 빠진 베드로의 작은 믿음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집사님께서 질문을 하십니다.

“목사님, 그래도 배 안에 있던 제자들보다는 베드로가 더 믿음이 좋은 것 아닐까요?” 질문을 받고나자 ‘어?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이야기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임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말씀을 되새기며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참 기가 막히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종아, 빠져야 건져주지.”

생각해보니 제가 물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배 난간을 붙잡고 앉아서 살려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다시금 사명의 도전을 받고 교회를 개척하는 동기가 되었던 말씀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주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고, 또한 동료 제자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행동에는 베드로의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 계신 곳에 가보고 싶어합니다.

그 진심이 예수님의 발 앞에 비싼 향유옥합을 깨뜨리게 하고, 새벽에 대책 없이 예수님의 무덤가로 향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런 성도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신앙은 ‘진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사실을 통해 믿음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항상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이렇게 진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을 기반으로 생각하고, 평가하고, 결정하기에 언제나 이상한 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진 이 말씀의 결론을 요한복음 21장에서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후 갈릴리의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을 발견하자마자 또 바다로 뛰어드는 베드로의 모습이 나옵니다. 갈릴리바다는 평균수심이 43m나 되는 매우 깊은 호수입니다. 베드로가 그것을 몰랐을까요?

그러나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라면 바다에 빠져도 안전하다’. 이것은 빠져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믿음입니다.

진짜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성도는 사실보다 진심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 계신 바다에도 빠질 수 있었고,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하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명자는 진심을 가진 자입니다. 진심을 가진 자가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내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물에 뛰어듭니다. 사랑이 진심을 만들고 진심이 사명을 감당하게 합니다. 

목회자들이 참 좋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엘리야의 까마귀’에 대한 말씀입니다. 엘리야가 그릿시냇가의 동굴 속에 피해있을 때 그는 가장 안전합니다. 그러나 동굴 속에 머물고 있는 엘리야는 이름만 엘리야이지 선지자 엘리야가 아닙니다.

엘리야가 그 동굴에서 나와야만 사르밧 과부의 가정이 살아나고, 아합과 바알의 선지자들이 물러가고, 메마른 대지에 단비가 내립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까마귀 밥을 먹이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 대하여 진심인 성도는 주님 계신 바다에 기꺼이 빠져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야만 이 땅에도 하나님의 거룩한 표적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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