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님은 해방둥이 첫 딸과 아래로 아들 넷을 낳았다. 아마 그 시대 풍조에 따라 그랬을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과 전혀 다른 가족관을 가지셨다. 

고향 진해는 해마다 4월이 오면 벚꽃축제가 열렸다. 벚꽃이 피고 질 때까지 보름 남짓 축제가 열렸다. 평소 조용하고 깨끗한 군항도시는  축제 기간 동안 거리마다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부모님은 그 복잡한 벚꽃 축제장에 해마다 우리 가족을 데리고 축제를 즐기러 나갔다. 그날만큼은 다섯 자녀의 소원을 다 들어주셨다.

풍선도 전통과자도 사주고, 서커스와 빙고 오락장에도 데리고 갔었다. 그날을 기념해 가족사진도 꼭 찍었다. 누렇게 낡은 흑백사진이 그때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평소에 아버지는 일요일만 되면 시내 중앙에 솟아있는 제황산에 자녀들을 이끌고 등산을 갔다. 힘들게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올 땐 진해 중앙시장통으로 내려가 정육점에 들러 고기를 사셨다. 그리고 집에서 불고기 파티를 열었다. 가족 모두가 기억하는 행복한 추억 중 하나다.

자녀 둘을 낳아 키우면서 나는 부모님의 가족관을 많이 닮아 갔다. 공평하게 자녀를 사랑하기와 자녀와 좋은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 주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평소에 나는 아이들의 친구 같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다. 

여름마다 처형 네와 막내 처남 네와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다. 주로 아이들과 놀기에 적합한 모래사장이 있는 서해안 해수욕장 여러 곳을 갔었다.

캠핑하며 고생도 했지만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각 가정마다 자녀를 둘씩 두었는데  아이들은 지금도 친 형제처럼 지낸다. 그때의 즐거운 추억을 공유하고 있어서 일게다.

가장 추억에 남는 여름휴가는 안식년을 맞은 어느 해 여름에 호주로 가족 배낭여행을 떠난 일이었다. 무려 한 달 동안 시드니, 멜버른, 브리스 번을 배낭여행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그 당시 대학생과 고등학생이었던 딸과 아들도 최고의 해로 기억한다.

이후로 나는 가정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배우고, 성도들에게 가족행복 찾아주기에 힘썼다. 전문 가정사역 기관인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부부학교를 유치했다. 나름으로 교회 자체적으로 노인대학과 주부대학, 중년부부세미나, 1박 2일 가족캠프 등을 운영했었다.

이제는 은퇴 후 비영리단체로 가족행복학교를 설립해서 가족 행복찾기를 이어가고 있다. 평택시 주민예산 청구 제도를 통해 가족행복캠프에 대한 기획안을 올려 선정되었다. 이로 인해 예산 지원을 받아 가족행복캠프를 시행하고 있다.

제1기는 코로나 상황으로 2020년 11월에 양평 한화리조트에서 6가정을 대상으로 2박 3일 캠프를 가졌다. 

제2기는 역시 코로나 상황이 고조되어서 2021년 12월에 줌으로 한 차례 강의와 평택 근교 카라반 캠프장에서 1박 2일과 성탄절에 축하파티로 진행했다.

제3기는 올해 전반기 오미크론 확산으로 연기되어 7월 16-17일 1박 2일로 안성 너리굴문화마을에서 진행했다.

가족행복 찾기는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음먹으면 다양한 방법이 있다. 가족들이 평소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할 때 더 소통을 잘 하고 행복하면 좋겠다. 문제가 생기고 심각해진 후에 접근하는 건 쉽지 않다. 깨어진 관계를 수습하기란 참 어렵다.

그래서 가족행복캠프는 건강할 때 더욱 건강을 챙기듯 평범한 가정의 행복찾기를 응원하고 안내하려고 한다.

행복은 삶의 의미 찾기라는 말이 있다. 무엇보다 가족 관계에서 행복을 찾아보자. 가족이 행복하면 나 자신이 행복해진다. 삶의 의미를 먼 곳에서 찾지 말자. 솔로 나라에서 누리는 행복은 반쪽에 불과하다. 부모와 자녀가 있고 치유와 환대와 섬김이 있는 곳이 행복한 곳이다. 지상에 가정만큼 이런 행복을 주는 곳이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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