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변성결교회

안변성결교회(함경남도 안변군 학성면 영춘리 80, 1946년 9월 안변군과 함께 강원도로 이관됨)는 함경도청에서 근무하던 류기태 씨가 1932년 1월 안변군청으로 전근하여 성결교회가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열심히 전도한 결과로 구도자가 일어나자 1932년 4월 9일에 경성성서학원 수강생인 정긍섭 형제를 파송하여 개척하였다.

주의 놀라운 축복으로 구도자가 속출하자 초가 4간을 세로 얻어 4월 17일에 장년 7인과 유년 29인으로 더불어 창립 예배를 드렸다. 

당일 밤부터 24일 밤까지 원산교회의 후원하에서 ‘대거전도회’를 열고 아침에는 청신기도회, 낮에는 개인전도·심방·축호 전도지 배부가 있었고, 오후 4시∼5시까지는 악대를 선두에 세우고 큰 광고판을 높이 들고 웅장히 찬미를 부르며 가로를 순회하면서 집회를 광고하고, 밤에는 8-90명 혹은 100여 명의 무리에게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결심자 93인을 얻었는데 그중에 수십 명은 ‘청신기도회’에도 참석하여 죄를 회개하고 중생하였다고 간증한 자가 남녀 42인이나 되었다. 

5월에는 주일예배 출석수가 장년만 60여 명이나 되었다. 이에 강라운 전도부인을 파송하였으며, 11월 15일에는 ‘유년 감사일’로 모여 그 바친 물질로 하얼빈 동포를 도와주었다. 동월 17일∼23일까지는 강송 목사의 인도로 부흥회를 열고 많은 은혜를 받는 중 결심자 24인과 성결자 9인을 얻었다.

안변교회는 1933년 1월 ‘원산제이교회’가 개척되는 일에 원산제일교회와 협력하였다. 정긍섭 전도사·강라운 전도부인·류기태 집사의 헌신적 사역으로 교회는 날로 왕성케 되어, 예배당이 협소하여 도저히 예배드릴 수 없게 되매, 개척 1주년이 되는 4월에 본교회 신자들의 헌금과 각 방면에서 개인과 단체의 도움을 받아 총공사비 689환으로 기공하여, 8월 20일에 준공과 동시에 성서학원 교수 이건 목사의 주례하에 헌당식을 거행하였다.

1934년 2월 25일∼28일까지 김경흡 전도사의 인도로 ‘신년성회 부흥회’를 열고 일반은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새로 결심한 자 5인, 회개자 남녀 7인, 중생자 남녀 5인, 성결자 남녀 6인이나 되었으며 특별히 감사한 것은 ‘연초 소매상’을 운영하던 송대윤 씨는 자신의 직업이 신앙에 배치된다하여 폐지하였으며, 김원자 씨는 삼십 팔 년 된 묵은 죄를 통회 자복하고 자기 식구 11명을 당일로 주께 인도하였다. 

3월 26일∼28일까지 조양형 집사의 인도로 소아부흥회를 한 결과 성신의 불같은 역사로 16명의 회개자와 15명의 중생자와 11명의 성결자가 일어났다. 5월 13일 주일에는 안변의 명소인 ‘굴등산’에 가서 김경흡 전도사의 인도로 야외예배를 드렸다.

1935년 12월 8일∼10일까지 강송수 목사와 이정원 목사 인도하에 특별집회를 열어 큰 은혜를 받았으며 박태주 목사의 인도로 4명의 학습예식과 4명의 세례 예식을 행하였다.

1938년 1월 6일∼9일까지 이준수 목사의 인도로 아동부흥회와 교회학교 교사 강습회·장년 기도회와 구령회 등이 있어, 장·유년 일반은 많은 은혜받았으며 사무연회까지 있어 주께 영광을 돌렸다.

1939년 2월 22일∼26일까지 신은천 전도사의 인도로 부흥회를 열었는데 일반신자가 풍성한 은혜를 받았다. 9월 7일∼9일까지 함남지방회가 안변교회에서 개최되었다.

1940년 1월 8일부터 1주간 김원식 목사의 인도로 부흥회를 열고 일반신자가 풍성한 은혜를 받고 마지막 날은 사무연회로 모여 남녀 집사 7인을 임명하고 주께 영광을 돌렸다. 안변성결교회는 1943년 12월 29일 성결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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