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역사에서의 성결성 회복 운동 성결성 회복을 외치는 지금 우리의 외침은 교회와 사회를 향한 선지자적 목소리 될 것 18세기부터 현재까지 성결운동가들의 성결에 대한 이해와 그 실제적인 성과를 현재 한국교회에 대한 문제와 그에 대한 성결교회의 대안이라는 틀로 바라보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특히 존 웨슬리의 성결에 대한 이해로부터 19세기 성결운동가들의 성결신학 그리고 한국의 이명직과 이성봉 두 분의 성결한 삶을 통해서 우리는 한국교회 더 나아가 한국사회를 위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이명직과 이성봉 두 분을 통해 살펴볼 때, 한국성결교회는 역사적으로 성령세례를 통해 성결성이 실제화될 수 있다고 고백했다는 사실이다.

성령세례는 성결의 은혜가 순간적으로 충만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간구하는 자들에게 성결의 은혜를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중생의 은혜가 믿음으로 순간적으로 일어난 것과 동일한 모습으로, 성결의 은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결하게 하실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믿고 기도하는 때, 순간적으로 받게 되는 것으로 고백했다.

순간적인 성령세례를 통해 성령의 열매(갈 5:22~23)를 맺은 그들의 삶은 구체적으로 복음에 대한 열정과 영혼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성결한 삶은 세상의 그 누구보다 철저하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었다. 특히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났다.

이 성령세례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서 인간의 관료주의를 근본적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립하도록 촉구하는 것이요, 그만큼 관료화된 기존 교단과 교회들이 부담스러워한 모습이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바로 성령세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언제고 인간의 죄를 근원에서부터 멸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는 것과 인간을 근본적으로 바꾸실 의지가 있으심을 받아들이는 고백을 하였다. 특히 이 성령세례를 통하여 죄의 정화와 함께 전도와 봉사를 위한 능력을 받을 수 있음을 함께 고백하고 체험했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명목상의 신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새로워져서 선한 삶을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이며, 미국에는 진정한 웨슬리안으로서 흑인노예, 여성, 가난한 자를 위한 행동에 과감히 나섰던 것이다.

둘째, 한국성결교회는 구체적으로 성령세례를 사중복음이라는 확대된 신학 체계로 설명하였으며, 실제로 사중복음적인 삶을 살았다. 다시 말해 사중복음을 통하여 그 성결성을 설명하였다.

아직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중생의 복음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스스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온전한 성화와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의미하는 성결의 복음을, 그리고 영적인 고통만이 아니라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는 신유의 복음을, 그리고 어렵고 암울한 상황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신앙인들에게는 재림의 복음을 제시하면서, 통전적이고 총괄적인 신앙인으로 성장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사중복음은 이제 생명, 사랑, 회복, 공의라는 기독교적 가치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중복음은 역사적으로 색이 바랜 신학주제가 아니라, 오히려 무기력해진 한국교회를 향한 복음주의적 선언이요, 한국교회를 건강하게 지속 가능하게 하는 영적 백신이 될 수 있다.

셋째, 역사적으로 한국성결교회가 성결성을 회복하는 것은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를 향한 분명한 대안적 모습이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신앙 선배들의 성결성을 회복한다면, 기존 교단들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이미 오랫동안 진행되어 전반적인 무기력을 양산하고 있는 관료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함께 들어온 명목상의 신자들의 모습과 세속주의를 함께 떨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통해, 개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 진정한 교회를 이루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성결교회가 성결성을 회복하자는 외침은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를 향한 선지자적인 목소리가 되어, 강한 공명과 울림을 가져올 것이다.

결국 선배 성결운동가들과 비교하면, 현재 우리는 성결의 교리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결의 모양과 성결의 능력이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다.

1921년 이명직 목사의 부흥운동이 경성성서학원에서 시작되었고, 이성봉 목사의 성령세례가 교단총회에서 있었듯이, 목회자들이 그리고 신학자들이 성결이론에 대한 논쟁의 자리에서 이제 솔선수범하는 성결한 삶의 자리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