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평생 가난한 이웃의 벗, ‘봉천동 슈바이처’

제56회 청룡봉사상 인(仁)상 
판자촌서 46년 의료 봉사  
40년 낙도 찾아 자비량 선교
관악장학회 설립, 장학사업도
가난한 자 위해 반평생 헌신

봉천동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윤주홍 장로(화곡교회 원로 · 사진)가 투철한 희생정신으로 사회를 밝힌 시민들의 공적을 기리는 청룡봉사상을 수상했다.

지난 6월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56회 청룡봉사상 시상식에서 윤주홍 장로는 인(仁)상을 수상했다. 청룡상은 충(忠), 신(信), 용(勇), 인(仁), 의(義) 5개 부문을 수상하는데, 충, 신, 용 상은 경찰관이 수상했고, 위험을 무릅쓰고 이웃을 구한 시민 3명에겐 의상이 수여됐다. 인상은 46년간 의사로 어려운 이웃을 진료한 ‘봉천동 슈바이처’ 윤주홍 장로와 10년간 남몰래 10억여 원을 기부해 온 ‘대구 키다리 아저씨’ 박무근 씨가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서 윤주홍 장로는 “내가 가진 모든 게 없어질 때까지 남을 돕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주홍 장로는 1972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이듬해에 당시 판자촌이었던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윤주홍 의원’을 열었다. 이후 그는 ‘봉천동 슈바이처’로 불리기 시작했다.

봉천동은 차 타이어가 펑크나서 우연히 들렀던 곳이었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는데 사람 발이 종이에 덮여 있었다. 처음엔 시체인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자고 있는 사람이었다. 온 식구가 길가에서 종이를 덮고 자는데 아들 키가 커서 그 발이 삐죽 나와 있던 것이었다.

윤 장로는 이 사건 이후 봉천동에서 한평생 의사로 살리라 마음 먹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하나님께서 새 삶을 주셨을 때 ‘나도 베푸는 삶을 살겠다.’ 다짐했는데, 하나님이 봉천동 달동네로 이끄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윤 장로도 처음부터 ‘슈바이처’ 같은 의사는 아니었다. 의대를 졸업한 첫해에는 돈 버는 재미에 빠져 주일에도 일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을  데려가셨다. 교통사고였다. 그 사고 이후 그는 병원 문을 닫고 시름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다시 부르셨고, 그는 순종해서 봉천동에 병원을 개원하게 된 것이었다.
이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마음먹은 윤 장로는 돈 버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가난해서 병원에 못 가는 사람들이 그의 주된 환자들이었다.

한번은 폐렴 환자를 치료하러 달동네에 왕진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2인조 강도를 만났다. 칼을 들이대고 위협하던 강도가 윤 장로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아들을 무료로 치료해준 고마운 의사라며 그를 놓아주었다. 아낌없이 베푼 선행의 결과로 생명을 지킨 것이다.

그의 의술은 감동의 드라마도 여러 개만들어 냈다. 한번은 어떤 소년이 철가방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봉천동 병원을 찾아와 짜장면을 한 그릇을 내려놓았다. 무슨 사연인가 물었더니 그 소년은 어릴 적 고아원에 있었는데 맹장염으로 고통받을 때 윤 장로가 수술해줘서 살았다고 그 은혜를 꼭 갚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소년은 짜장면 배달하며 받은 팁을 모았다가 짜장면 한 그릇 값이 되었을 때 윤 장로를 생각하며 길음동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봉천동까지 배달을 온 것이다.

이처럼 윤 장로는 2019년 병원 문을 닫을 때까지 46년간 가난하고 아픈 환자들을 돌봤다. 가난한 주민들을 생각해 진료비는 다른 지역의 절반 수준만 받았고, ‘돈이 없다’는 사람들에겐 무상 진료를 해줬다.


또한 그는 40년 넘게 매년 자비량으로 안면도, 간월도(서산), 내파수도(태안) 고대도(보령) 등 의료시설이 없는 섬을 찾아 의료 봉사도 했다. 1994년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관악장학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2,000명 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작년에는 고려대의료원에 의학발전기금 10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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