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토요일 오후 젊은 시절부터 골프를 함께 하며 어울려 다닌 동료 선후배들 넷이 오랜만에 점심을 했다. 지금 네 사람의 공통점은 이젠 필드에 나가지 않고 각자 다른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과 90세 이상의 부모님 중 한 분 이상이 생존해 계신다는 것이다.

올해 우리 아버님은 93세, 어머님은 90세가 되셨다. 7년 전 86세 생신을 맞으신 아버님이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너의 엄마와 나의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너의 엄마 모시고 여기저기 구경 다닐 수 있게 운전을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고 지금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두 내외가 함께 있도록 해 달라”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당시 운전자 보험계약을 다시 할 때 보험료가 두 배로 올라 확인해보니 한번은 아버님이 역주행으로 인한 사고가 있었고 두 번째는 접촉사고 때문인 것으로 확인되어 온 가족이 읍소하여 운전면허를 반납하시게 되었지만 지금도 아버님은 강릉 남대천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신다.

아버님은 현재 척추관 협착증으로 고통을 받고 계시다. 젊을 때부터 훤칠했던 키와 잘생긴 외모와 매너로 인기가 높으셨지만 늘 허리가 약하셨던 탓에 작년부터 허리가 조금씩 구부러지셨고 지금은 통증 클리닉의 주사나 약물에 의존하신다.

나는 매주 토요일 오후 두 분을 방문한다. 건강 상태도 체크해야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해드리고 어머니와 함께 마트를 방문해서 한 주간동안 드실 밑반찬과 간식과 생필품을 사드리고 아버지 등을 약물로 마시지를 해 드리고 저녁 식사를 함께한다.

어린 시절 저녁때가 되면 어머니는 우리 세 남매를 데리고 아버지 퇴근 시간에 맞추어 버스 종점으로 나갔다. 버스에서 내리신 아버지는 우리를 보시면 근처 소문난 빵집에 데리고 들어가 기름에 튀기고 설탕이 하얗게 묻은 도넛을 사 주셨다. 그 당시 다른 가게는 1,000원에 5개였는데 그 집은 6개를 주어 우리 식구의 단골집이 되었던 추억이 있다.

그렇게 우리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셨던 늠름한 아버지가 어느새 구순을 넘기셨고 허리가 구부러져 육순이 넘은 아들의 봉양을 받고 계신 것이다.

조선의 왕조실록과 같은 이스라엘 왕조실록이 구약성경 열왕기서 상·하이다. 열왕기상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윗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사울이 초대 왕이었던 이스라엘에서 다윗은 목동으로 아버지의 양과 염소를 돌보고 있었다. 그때 이웃나라 블레셋이 거인 장수 골리앗을 앞세워 침략해 온 것이다.

자신의 나라가 풍전등화의 순간 그는 전장으로 나가 골리앗을 쓰러뜨려 일약 스타로 등극한다. 그리고 사울 왕의 뒤를 이어 30세에 왕이 되었다. 그런 다윗이 나라를 다스린 지 40년, 그의 왕국은 근동의 강대국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쩌랴! 세월에 장사가 있으랴! 기력이 떨어지고 이불을 덮어도 몸이 따뜻하지 않았던 다윗은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요즈음 아버님이 식사량이 많이 줄었다고 어머니께서 귀띔하신다.

허리의 근육이 빠져나가 뼈가 드러나 보이니 눕거나 앉거나 하시는 것이 힘이 든다고 하신다. 기운이 떨어지시는지 누우면 곧 곤한 잠에 빠져 버리신다.

요즈음 아버님은 어떤 기도를 하실까?

“주님, 어느 날 문득 눈뜨지 않게 해주소서. 내가 갈피를 넘기던 책, 내가 쓰던 차가운 컴퓨터, 그 일상에 둘러싸여 눈을 감고 싶어요”
이어령은 이렇게 기도했는데….

아버님은 50세 중반에 신앙을 가지셨다. 그리고 교회에 처음 나가실 때부터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셨고 국가와 민족과 교회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셨는데 신자들이 돌아간 늦게까지 교회를 지키셨다. 교회는 아버님의 믿음과 삶을 인정하셔서 60대 중반에 장로 안수를 주셨고 최근 보행이 불편해지기 전까지 그 신실한 삶을 이어오셨다.

그러나 지난 여러 해 동안 친구들이 하나둘 먼저 세상을 떠나거나 요양원으로 들어가고 심지어 집안 손아래 동생들의 부음을 듣게 되는 요즈음 아버님은 무슨 기도를 드리고 계실까?

때때로 서 있기가 불편하고 힘이 빠진다고 말씀하시는 모습 속에서 인생의 고단함과 고독감이 묻어나지만, 가끔 꿈속에서 보신다는 하나님 나라의 환상이 매일 아침 가족 단톡방에서 ‘오늘의 말씀’으로 아침을 깨우는 파수꾼 역할을 담당하게 하시는 활력이 되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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