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같이, 바람같이

오순절(Pentecost)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주일의 의미는 현대 교회와 강단에 절실하고 긴급하다. 슬프게도 우리는 쇠락과 위기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지식의 향상과 교회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여러 지표들이 보여주듯, 세상의 소망이었던 원래 교회에 존재했던 거대한 생명력은 급속히 약화되어가고 있으며, 많은 신자들은 세상 속에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게다가 교회의 심장인 강단 또한 급격한 시대의 변화 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으며, 그 동력을 서서히 상실해 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짓누르는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긴급한 필요는 초대교회 안에 부어졌던 ‘위로부터의 능력’(power from on high, 눅 24:49)이다. 

가장 긴급한 필요
성경을 보면 초대교회는 배우지 못한 소수의 갈릴리 출신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작은 교회였다. 그것은 로마 군인들의 번뜩이는 칼과 유대인들의 극심한 반대와 핍박 아래 있던 교회였다. 또한 그들은 연약하며 심지어 무기력했다.

그러나 소망없는 그들의 교회에, 두려움에 벌벌 떨던 그들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겁쟁이 교회에서 담대한 교회로, 절망의 교회에서 소망의 교회로, 그리고 무기력한 교인에게서 천하를 소동케 하는 능력있는 교인들로 변화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익히 아는 바처럼, 단 하나의 주목할만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의 기원은 예수께서 승천 시에 제자들에게 엄중하게 분부하신 말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그리고 얼마 후, 약속대로 오순절날 불과 바람 같이 성령께서 임하시자, 교회는 새로운 하늘의 날개로 치솟아 올랐으며, 복음은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다.

따라서, 특히 초기 몇 세기동안 초기교회에서 부활절 다음으로 오순절을 가장 중히 여긴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성령없이 교회는 존재할 수 없음을 그들은 온 몸으로 목도했기 때문이다.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는 이 즈음 우리의 강단은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들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약속하신 성령께 시선을 돌리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에 관해 강단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것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의 절실함을 말하라!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성령을 기다리라”(행 1:4)는 주님의 명령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이 명령을 들은 제자들은 누구인가? 이 제자들은 오늘날로 말한다면 교회의 목사로, 사역자로, 지도자로 일하기에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인물이었다.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우리 주님과 삼년 동안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다. 책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와 달리, 이들은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며 주님의 모든 설교와 교훈을 들었던 이들이다. 

그 뿐인가. 그들은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려내시고, 폭풍우를 잠잠케 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권능과 기적을 바로 옆에서 직접 목도한 이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우리의 구원자요, 설교의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하심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이었다.

오늘날로 이야기한다면 이들은 최고의 신학교육과 모든 제자훈련과 제직훈련과 전도훈련을 마친 특급제자들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완벽하게 준비된 듯한 제자들의 공적인 사역을 올스톱 시키셨다. 그들은 성령을 받을 때까지 꼼짝말고 예루살렘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하다면 오늘날의 설교자와 성도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 위대한 사도들조차도 성령의 능력과 충만이 필요했다면 현대 설교자와 성도들은 어떠하겠는가! 강단은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들이 세련된 건물이나 조직이나 프로그램에 만족하지 않고, 교회의 유일한 능력이신 성령께 시선을 돌리도록 강권해야 한다.  

성령의 실재와 능력을 믿으라!
예수님 부활 후, 50일째 되던 날 일어난 성령강림의 사건은 성경책 안에만 머물지 않는 현존하는 ‘실재(實在)’임을 성도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성령 강림과 충만의 사건은 성경의 증언일 뿐 아니라 존 웨슬리(J. Wesley), 존 플렛처(J. Fletcher), 드와이트 무디(D. Moody), 찰스 피니(C. Finney), 로렌스 우드(L. Wood), 이명직, 이성봉과 같은 현대에 이르는 수많은 선진들의 사례에서 보듯, 실재하는 사건이요, 능력임을 힘주어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령의 능력을 참으로 믿고 필사적으로 간구해야 하는 곳은 다름아닌 현대강단이다. 한 위대한 설교자는 현대강단에서 성령은 그저 ‘성령을 믿사오며’라는 공허한 신앙고백 속에만 있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성령은 말씀을 전할 때, 전도할 때, 설교자가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유일하며 실재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위대한 설교의 거인들의 설교사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옛 위대한 설교자들은 말씀에 정통했으며, 뛰어난 신학자였으며, 황금의 입을 가진 탁월한 커뮤니케이터였다. 그러나 그들이 종국적으로 의지한 것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바로 성령의 능력이다. 

그들의 설교를 기록하고 있는 옛 기록들을 유심히 보라. 예를 들어 18세기 가장 위대한 설교자라 평가받는 휫필드(G. Whitefiled)의 설교에 관해 역사가는 이렇게 기록한다. “설교 말씀에 성령의 특별한 능력이 함께 했다. 회중들은 크게 애통했다.”

19세기, 교회사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로 평가받는 스펄전(C. H. Spurgeon)의 설교에 관하여 전기 작가는 이렇게 기록했다. “스펄전은 회중 앞에 설 때면 ‘위로부터 능력이’ 크게 임하는 것을 경험했다. 그의 설교는 확신이 넘쳤고, 가르침이 분명했으며, 마음을 울렸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강해설교자로 평가받는 마틴 로이드 존스(M. Lloyd-Joens)의 설교를 보라. 피터 루이스(P. Lewis)와 레이 포웰(L. Powell)은 이렇게 그의 설교를 증언한다.

“결론적으로 그가 기도했던 한 가지, 그가 의지했던 것 한 가지, 그가 기다렸던 한 가지, 그리고 그 세대의 다른 설교자들이 로이드 존스의 설교에서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었던 한 가지는 성령의 기름부음이요, 성령의 임재였다…

때때로 성령의 바람이 불어서 우리를 휩쓸고 날려 올렸으며, 우리는 독수리 같은 날개로 날아올라 경외감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곤 했다.” 현명한 설교자라면, 이러한 기록들을 글로만 가벼이 여기지 않을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라!
옛 설교의 거인들은 성령께서 축복해 주시지 않는 설교자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설교자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죄인의 감동과 거듭남과 교회의 참된 부흥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사도 바울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라고 말했다.(고전 2:4) 뿐만 아니다. 성령의 능력부으심이 아니면 신자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그 분의 뜻을 따라 온전히 행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웨슬리는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란… 성령께서 우리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소원하고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통해 우리는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행하게 된다.” 따라서,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설교도, 전도도, 성결의 삶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설교학을 연구하며 절감하는 현대 설교학의 가장 큰 슬픔은 설교의 내용과 형식에 지나치게 집중하느라 성경의 사도들과 교회사의 설교의 거인들이 설교의 사활을 걸었던 성령에 대한 진지한 강조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는 점이다.

황금의 입을 가졌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자로 평가받는 스펄전의 사자후(獅子吼)는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는 현대교회와 강단에 처연하고 긴급하다. 스펄전은 말한다. “혀가 썩을 때까지, 폐를 다 써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설교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를 변화시키는 성령의 신비한 능력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우리의 설교는 한 영혼도 회심시킬 수 없다. 오, 설교자들이여! 영혼을 참회케 하는 능력을 주시는 성령께서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설교는 돌벽을 향해 말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시겠다 약속하신 성령(행 2:17~18)이 그 분을 사모하며 필사적으로 의지하는 모든 교회와 강단에 다시 한 번 불같이 바람같이, 장대비같이 임하시길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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