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목회 여정

정승일 목사가 부산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충남 공주읍교회의 장로로부터 자기 교회의 목사로 모시겠다는 청빙을 받는다.

마침 공석인 자기 교회의 담임목사를 모시려고 왔는데, 잘 아는 목사의 추천으로 정승일 목사를 청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안수를 받자마자 40년 간의 목회 대장정이 시작되게 되었다. 이제 그의 한국에서 목회한 4개 교회의 사역 중 중요한 사건만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충남 공주교회는 그가 1951년 부산총회에서 안수를 받고서 처음 시무한 교회였다. 그는 첫 목회자의 감격으로 부임하여 기도에 힘쓰면서 1953년 중순까지 그만의 특유의 말씀의 깊이 있는 설교로 오래된 신자들의 신앙에 새로운 각성과 힘을 공급해 신앙의 강화에 힘썼다.

서울 체부동교회는 1953년 6월에 체부동교회의 청빙을 받아 부임한다. 체부동교회는 종로의 중앙청 부근 교회로 주민들의 문화 수준이 당시 한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높은 학식과 체험한 은혜로운 설교가 맞아 교회는 더욱 부흥되었다.

특히 1955년 1월에 신촌교회가 이 교회에서 창립된 것이 특이하다. 당시 부흥사이며 그의 장인 이성봉 목사가 신촌의 자기적은 집에서 개척할 때 창립예배를 체부동교회에서 지교회 형식으로 드린 것이다. 현재 신촌교회는 교단 최고의 성장하는 교회 중 하나다.

신덕교회는 1964년에 신덕교회의 청빙을 받아 부임한다. 이 교회는 기성의 신공덕교회와 예성의 신흥교회가 통합하면서, 제3의 목사를 모시기로 합의한 결과 정 목사가 부임했다.

그의 화해의 목회관에 따른 감동적 설교에 성도들이 하나로 화해하여 크게 부흥하였다. 1965년 필자가 목포 북교동교회 전도사로 시무할 때였다.

당시 목포기독교연합회(회장 홍순균 목사)가 해마다 교단별로 개최하는 여름성경학교 강습회를 지양하고 연합적으로 하기로 했다. 그때 7월 초순에 5일간의 강습회 일정을 낮에는 교육 프로그램, 저녁에는 교사 사명의 부흥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필자는 연합회장 홍 목사님의 지시에 따라 교사부흥회 강사로 정승일 목사를 초청하기로 건의하자, 교세가 막강한 장로교 대표들이 성큼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가 추천한 강사가 서울의 큰 성결교회의 담임목사인데, 서울신학대학과 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한 학구파 목사이며, 서울신학대학의 강사임을 일부러 강조해서 확정했다.

연합강습회 때 오신 강사 정승일 목사님은 4일간  저녁마다 설교하셨는데, 500여 명이 가득한 교사들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17) 하는 주제로,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린양을 먹여야 한다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다.

아현교회는 1976년 2월에 아현교회의 청빙을 받았으나 1년간 기도한다는 조건으로 부임했다. 그는 늘 뉴욕에 성결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선교적 부담이 있어 기도 중이었다. 그것은 미국에서 잘살고 있는 동생뻘 되는 장로를 미국 여행 중에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은 정 목사님의 설교가 너무 좋아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성결교회를 뉴욕에 개척할 수만 있다면 이민 초청부터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당시 이민이 쉽지 않아 하나님의 뜻이면 가겠다고 했는데, 그 후 3년 만에 아현교회 시무 중 초청장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해 12월 초에 교회를 사직하고 미국 목회를 위해 가족과 함께 떠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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