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으로 부서진 청춘, 복음의 능력으로 치유
17세에 ‘사디(SADI)’ 입학한 패션 영재
학교 폭력으로 좌절, 학업 중단, 공황장애 등 정신장애까지 찾아와
하나님 만나 진정한 치유 받고 이 땅에서 ‘부활’ 의미 체험해
5년 만에 복학해 재능 회복 중

부활절을 맞아 학교폭력의 상처로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졌다가 주님을 만나 일상으로 복귀한 패션 영재를 만났다. 삼성이 세운 디자인스쿨 ‘사디(SADI)’에 재학 중인 한명윤 청년이다.

그녀는 17세에 사디에 조기 입학 했으나 학교폭력과 따돌림으로 심각한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빠졌다. 이 사건으로 오빠마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가정도 해체되는 절망을 경험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찾아왔다. 바로 복음의 빛이다. 

그녀는 백송교회에서 치유를 받고 그리고 마침내 다시 일어섰다. 지난 3월, 5년 만에 학교로 돌아갔다. 새로운 삶을 되찾은 그녀에게 부활은 그래서 살아있는 신앙이 되었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영재 소녀 
한명윤 씨(백송교회, 27세)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 또래 아이들이 국,영,수 학원에 다닐 때 라사라패션학원에 다녔다.

예술의전당에서 미술영재 발굴을 위해 실시한 김흥수 화백 영재 미술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1등으로 수료하고, ‘김흥수 화백 영재미술전’에서 최다 작품을 전시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미술영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수의 관계자들은 명윤의 재능을 극찬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산업인력관리공단 패턴양장기능사’ 자격증을 최연소로 취득하고, 중학교 2학년 때는 삼성에서 운영하는 ‘삼성디자인 교육원 사디(SADI)’의 원대연 학장으로부터 조기 입학을 권유받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양복을 만든 우복승 선생에게 패턴을 사사 받는 등 명윤 씨는 패션 분야의 꿈나무로 주목을 받으며 놀랍게 성장했다.  

학교폭력으로 극심한 우울증 
사디(SADI)에 입학한 후 명윤의 삶은 달라졌다. 사디는 패션 디자이너를 꿈꾼다면 누구나 입학하기 원하는 최고의 명문 디자인 학교 기관이다. 그만큼 입학 과정도 어렵고, 입학 후에 교육과정도 철저하고 까다로워 졸업하기 매우 어려운 곳으로 유명하다. 평균 패션학과 40명 중 18명 내외로 졸업할 정도로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졸업하고 나면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장래는 보장받을 수 있었다. ‘사디 졸업생’이 자격증인 셈이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곳그 사디에 우수한 실력을 인정받아 어린 나이에 입학한 명윤 씨가 다른 학생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두 학기는 순조로웠다. 보통 1~2살 위의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수업도 잘하고, 관계도 좋았다. 그러나 전공이 시작되는 3학기가 되면서 학교폭력도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과정이 고도로 전문화되어 과제도 많아지고, 경쟁도 치열해진다. 이때 명윤 씨보다 나이 많은 남학생 2명이 과제를 대신하라고 시켰다. 남들에게 말도 못하고,  명윤 씨는 3개월간 남학생들의 과제를 해주었다. 본인의 과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데, 2명의 과제를 더 해야 했으니 몸과 마음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그 남학생들에게 과제를 대신해줄 수 없다고 말하자 그때부터 무자비한 폭력이 시작되었다. 신체적인 폭행 뿐 아니라 왕따, 근거 없는 성적 소문까지 명윤 씨가 감당하기에 너무도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속되었다. 결국 그녀는 공황장애로 학업은 물론 일상생활까지 힘들어졌고 결국 휴학을 해야 했다. 

가정 파괴로 이어진 학교폭력
패션 디자인 분야의 떠오르는 영재로 주목을 받던 명윤 씨가 하루 아침에 일상 생활까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니 가족의 절망이 컸다.

아버지는 명윤의 고통을 지켜보기 어려워 사업을 그만둔 채 집을 나갔다. 사랑하는 동생 명윤의 고통을 지켜보며 분노를 견디지 못한 오빠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명윤 씨의 가정은 파괴되고 해체되었다. 

그러나 명윤 씨의 어머니 강수정 성도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심리상담을 100번 이상 받고, 가톨릭, 불교, 만다라 마인드 프로그램 등 딸에게 좋다면 어떤 종교든 상관없이 도움을 구했다.

이화여대 문인화 수업, 동양화 수업, 나눔케어 PT, 심리공부, 국토 종주, 심지어 강아지 키우기까지 딸의 불안과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백방으로 찾았고, 최선을 다해 적용했다.  

그러나 어떤 종교든, 프로그램이든 참가할 때 잠시 나아졌을 뿐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모든 치료가 소용이 없었다. 결국 명윤 씨도 어머니도 지쳤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절망의 끝자락에 닿아 있었다. 

백송교회와 하나님의 치유 
2021년 8월 10일, 이날은 명윤 씨와 어머니가 백송교회 예배에 처음 참석한 날로 두 사람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평생 적극적인 불신자로 살았던 어머니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눈물로 회개한 날이고, 명윤 양이 하나님을 영접하고 희망의 삶으로 돌아선 날이기 때문이다. 

강수정 성도는 이렇게 고백했다. “예배에 처음 참여했을 때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몇 번이고 거절했던 날들, 자녀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고 저의 신념에 묶어놓았던 날들,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부하다가 고난 속에 절망을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제 자신의 죄 때문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명윤 씨는 그 후 7개월간 예배에 꾸준히 참석했고, 이순희 목사와 사역자로부터 안수기도를 받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학업이 가능하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고 지난 3월 복학을 했다. 5년 만이다. 학교폭력이 남긴 불안과 공포, 분노와 좌절에서 벗어나 환하게 웃으며 학교로 돌아갔다.

하나님의 손길이 명윤 씨의 마음 깊은 곳까지 어루만지면서 모든 상처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제 다시 어릴 적 꿈꾸었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고 있다.

놀라운 것은 지적장애 진단 신청을 고려해볼 정도로 낮은 지적수준까지 갔었던 명윤 씨가 이전의 재능을 회복하고 학교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삶, 이제는 하나님과 함께
긴 겨울이 가고, 새로운 봄이 왔다. 명윤씨와 어머니에게 2022년의 봄은 더 따뜻하고, 더 희망차고 더 찬란하다. 하나님과 함께 맞은 새 봄은 모녀에게 매년 오던 봄이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삶, 새로운 탄생이다. 이제 모녀는 주님과 꽃길을 걷는다. 

“예수님의 십자가 능력을 힘입지 않았다면 저는 아직도 고통의 한복판에서 가슴 치며 울고 있었을 것입니다. 백송교회에서 명윤이가 치유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시고, 치유의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강수정 성도의 고백이다. 그녀는 이제 명윤 씨를 괴롭힌 당시 학생들도 용서했다고 한다. 그녀는 “백송교회에서 예배드리면서 학교폭력 피해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고 모든 염려를 내려놓게 됐다”며 “앞으로 염려할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 드리기로 마음 먹었다. 백송교회 이순희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명윤 씨와 어머니의 삶과 고백이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어둠 속에서 혼자 괴로워하지 말고, 주님의 손을 잡으라고, 그러면 새로운 삶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한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