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갑산의 혜산진성결교회

'혜산’이라는 말은 ‘산에 있는 자원의 혜택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혜산진은 역사적으로는 함경도 갑산의 일부였고 혜산진을 중심으로 변경 방어를 위한 요새가 놓여있었다.

혜산진에 ‘성결교회’가 설립되기 이전, 1916년 ‘혜산진교회’, 1922년에 ‘운총리교회’, ‘운흥리교회’ 등을 비롯한 6개의 장로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혜산진성결교회(함경남도 갑산군 혜산읍 혜산리 551) 개척은 1931년 4월 13일에 김형식 전도사를 파송하여 ‘신정 2정목 551번지’ 소재 6간 가옥을 임시예배당으로 정하고 5월 3일 주일에 유년주일학교부터 시작하여, 남녀 34명이 오전 10시∼11시 30분까지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32년 1월 27일부터 5일간 ‘소아부흥회’를 열었는데 성신의 크신 역사는 90여 명의 아동의 심령에 크게 임하는 동시에 신생자 20여 명을 얻었다.

혜산진에서 50리 밖에 있는 어떤 사귀병자가 6년간 가진 고생을 다 하다가 4월 20일 교회에 찾아와서 믿기를 작정하고 23일∼26일 주께 간구한 결과 신유의 영광이 나타나 온전한 사람이 되므로 그 남편까지 믿기로 작정하였다.

1933년 12월 6일∼12일까지 주임교역자인 김형식 전도사의 인도로 부흥회를 열고 중생자 11인, 성결자 4인, 십일조 작정자 1인, 무기기도자 7인, 매 주일 1인 이상 전도하기로 한 자가 15인이나 되었다.

혜산진교회는 설립 이래 1차례의 사경회도 없었음을 유감으로 생각하여 1934년 2월 12일∼18일 1주일 동안 사경회를 열어 일반 신도들은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하지만 혜산진교회는 교역자와 교회당 없는 관계로 1935년 3월 13일 지방회 결의로 교인들을 장로교회로 부치고 교회를 폐지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교인들은 낙심치 않고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는 거룩한 약속의 말씀을 믿고 매일 눈물로 기도하던 중에 마침내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따라 믿음으로 예배당 건축을 시작하였는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여 각 교회에서 약속한 헌금과 신자들의 약속 헌금이 차차 수납됨에 따라 건축공사를 진행하여 총공사비 556원을 들여 예배당을 준공하였다.

1936년 12월 23일∼27일 강송수 목사의 인도로 부흥회를 열고 매일 3회씩 집회하였는데 일반 신자들은 큰 은혜를 받은 결과 통회자복 하는 자가 수다하였으며 성결자 1인, 중생자 6인, 새로 힘을 얻은자 28인, 새로 주일 지키기로 결심한 자 11인, 십일조 바치기로 작정한 자 3인, 매일성경보기로 작정한 자 15인, 매일 기회 있는 대로 전도하기로 결심한 자 5인, 교역자를 위해 기도하기로 작정한 자 27인, 새로 가정예배보기로 작정한 자 7인, 신결심자 30여 명을 얻어 주께 영광을 드렸으며 특히 금번 집회에서는 3인의 입회식과 5인의 학습예식과 여섯 유아의 헌아식 등의 거룩한 예식이 행해졌다. 또한 27일 오후 1시에는 헌당식을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1938년 3월 22일부터 김영범 목사의 인도로 부흥회를 진행한 결과 큰 은혜가 내려 결심자 23명과 통회 자복하는 자가 많았다.

이 집회에서 주택건축을 목적하고 헌금한 결과 200여 원의 헌금이 약속되었고, 26일에는 3인의 세례식과 8인의 입회식과 10인의 학습예식이 있었으며 27일에는 전기찬 목사의 취임식 등으로 주께 큰 영광 돌렸다.

혜산진교회는 1943년 12월 29일 성결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전기찬 목사는 해방이 되자 교회를 재건하여 목회하던 중 1948년 12월에 순교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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