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버리지 않았노라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힘을 잃고 실망할 때가 언제일까요? 아마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고 느껴질 때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도 않으시고, 관심도 없으시며, 그리고 나를 당신의 관심에서 제외하여 버리셨다고 느끼는 때가 가장 힘들 때이지요. 그때부터 어떠한 도움과 구원을 기대할 수 있는 통로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밑바닥의 삶을 살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내가 너희를 싫어하여 버리지 않았노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실제로 성경에 이렇게 서술되어 있으니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인생은 기대할 수 있는 인생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인생입니다!

이사야 41장 8~9절을 보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나의 종 이스라엘, 나의 택한 야곱,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이 명칭은 어떠한 명칭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어진 명칭입니다.

이 명칭은 하나님과의 행복했을 시간,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앞길을 바라다보시며 길을 인도해 주실 때 말씀해 주신 명칭이고, 하나님의 계획과 일들을 가르쳐 주실 때 불러 주신 명칭들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그들이 삶의 밑바닥을 지나쳐 오며 이러한 이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가셔서 다시금 이 이름들을 사용하셔서 그들을 불러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찾아가셔서 불러 주신 명칭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인 시켜 주는 명칭이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명칭이었다는 것입니다.

때로, 사람들이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를 지나면,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하는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고 잘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가중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찾아가시며, 가장 먼저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명칭을 불러 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다고 말해주셔도, 그리고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해주며, 그 정체성을 확인해 주셔도, 연약하고 죄 많은 우리 입장에서는 그 말씀이 못 미더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안 되고, 또한 하나님께 죄송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당신의 백성의 마음을 아시기에 다시 말씀으로 확인시켜 주십니다.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땅끝” “땅 모퉁이”는 어디를 가리킬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가 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곳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부르시고 붙잡고 계셨던 것입니다.

왜 은혜의 사각지대가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일들을 하며 하나님을 피해 숨어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땅끝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외면치 아니하시고 불러주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은 처음부터 우리의 자격과 준비, 그리고 내세울 것과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상황이 어떠하든 하나님은 나를 싫어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찾아오셔서 다시 정체성을 회복시키시고 당신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세우기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땅끝”과 “땅 모퉁이”는 어디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애굽이었습니다.

그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살 때, 그들은 하나님 없는 애굽사람처럼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자신의 조상들이 섬기던 하나님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 있는 온갖 우상을 다 섬기며 애굽사람처럼 살았지요. 그러다가 애굽에 왕조가 바뀐 뒤, 그들은 노예처럼 살게 되었고,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해방되어 한 민족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잘나거나 그들이 내세울 것이 있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이었습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에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 주님으로부터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회복을 경험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던 주님이 우리에게, “애굽과 같은 땅끝에서 너희를 부른 자가 누구냐?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너를 붙잡고 있던 자가 누구냐? 지금도 나는 너를 무척 사랑한다!”라는 음성을 들려주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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