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 하는 것이, 남의 말 내가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김천택이 펴낸 청구영언에 실린 이 시조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중‧고교 교육을 곁눈질이라도 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없을 것이다. 말이 말을 낳는 생리를 많이 겪어본 대통령 후보자들일 터인데도 장맛 써질 걱정은 아예 제쳐놓는 뱃심을 보면, 가히 대통령 후보답다고 해야 할 것 같다. (3월 8일 현재)

▨…  ‘네거티브 전략’은 이제는 모든 국민이 식상해 하는 ‘아니면 말고’이다. 노정태의 시사哲(조선일보)의 표현을 빌린다면 그것은 “거짓말로 호객하고 자리에 앉으면 정체불명 약을 파는 약장수 광대들”의 말놀이에 불과하고 분통만 터지는 저질 삼류 코미디에나 비교되어야 맞는 모습이다. 오류가 거의 없는 거짓말 탐지기가 작동할 날이 머지않았는데(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 네거티브 전략이라니! 대통령 후보들은 시대의 변화를 읽고는 있는 것일까.

▨… 말 많은 자치고 믿을 만한 자 없다는 불변의 진리도 이 땅의 대통령선거전에서는 예외로 인정되어야 하는가. 말솜씨에서는 한가락 한다는 자신감이 말에 말을 덧붙이게 만들지만 인간의 행동은 말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어 별개라는 사실 또한 불변의 진리이다. 말로써 말 많게 한 말놀음의 실체는 선거가 끝나면 저절로 밝혀지지 않을까.

▨… 러시아의 침공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 국가발전의 모델로 우리나라를 꼽았다고 한다. 그 뉴스를 접하면서 일부 한국인들은 목을 곧추세우기도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패배자가 죽어야 하는 오징어 게임을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진흙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후보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너나없이 확인한 탓일 것이다.

▨… 국제사회는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손꼽아 준다고 하지만, 냉정하게 우리 처지를 돌아보면 4.19와 5.18의 정신은 퇴색되고 온전히 청산했다고 믿었던 권위주의의 망령이 슬금슬금 머리를 들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또 다른 ‘한국적 민주주의’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지를 묻게 하고 있다. 우리 모든 국민이 전두엽에 손상을 입지 않은 한에서는, 4.19와 5.18의 정신이 이 땅의 민주주의의 기반임을 뉘라서 부정할 수 있는가. 비록 지도자들은 진흙 수렁에서 오징어 게임을 벌였더라도 이 땅의 민주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갔음을 한마음으로 선언하자. 새날이 밝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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