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백신이 나오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백신이 나오고도 코로나19는 계속 창궐했습니다. 먹는 약이 나오게 되면 예전 신종플루 때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도 종식되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먹는 약의 파급력은 약했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백신 3차 접종을 하면 집단면역이 생겨 끝이 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변종 바이러스로 인하여 그 예상도 빗나가게 되었습니다.

갈수록 많아지는 코로나19 확진자 숫자에 눌려 기대감은 온데 간데도 없습니다. 다만 오미크론 변종바이러스의 중증도가 낮아 감기처럼 우리 주변에서 사그라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고 예상했던 모든 것들이 어긋나고 있을 때, 우리는 그저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20)

수많은 아람군대 앞에서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할지 알지도 못한다는 여호사밧의 탄식과 외침이 오늘날 우리의 심정과 같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실 전에는 여호사밧 왕은 기댈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든든한 군사력이 자신의 뒤를 지키고 있었고, 항상 긴장 관계에 있던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이 이제는 사돈 관계로 맺어져 있기에 오히려 여호사밧 왕의 후견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라의 안팎이 든든하니 얼마나 마음이 편했겠습니까? 이러할 때에 아합왕은 그간 골칫거리였던 아람왕국을 정벌하자고 제안합니다. 그 제안에 여호사밧 왕은 호기롭게 찬성하고 나아갑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이없게 패하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왕은 전쟁에서 전사하게 되고, 자신은 겨우 전쟁터에서 도망칩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방어력을 정비하기도 전에 아람의 군대는 창끝을 유다왕국에 겨누고 예루살렘 목전까지 군대는 이르게 됩니다.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마치 코로나19로 인하여 허둥지둥 헤매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처럼 말입니다.

여호사밧 왕처럼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그 무엇’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를 도와줄 사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볼 때에 그것에 가려져 하나님은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은 ‘그 무엇’을 내려놓은 것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도 자신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던 ‘롯, 엘리에셀, 이스마엘’을 내려놓은 후에 이삭을 낳게 되었고, 다윗도 ‘사울의 갑옷과 칼’을 내려놓은 후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기드온도 자신과 함께했던 많은 군사들을 돌려보낸 후 300명의 군사로 적들을 이길 수 있었고, 사르밧의 과부도 자신의 마지막 가루와 기름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내어놓았을 때에 무한한 채움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왕도 많은 군사와 동맹국이 사라졌을 때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고, 하나님의 방법과 도우심으로 아람군대를 무찌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며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힘든 상황과 현실 속에서 고전분투하고 있을 때, 진정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있으신가요? 아니면 하나님이 아닌 ‘그 무엇’을 바라보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묵묵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순종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여호사밧 왕에게 주셨던 최후의 승리를 기억하며, 이 한 주간도 오직 주만 바라보며 나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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