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 부흥회 인도와 성경암송

김홍순 목사는 김진한 계장이 김 목사에게 성경과 서적을 주어 참으로 고마웠다. 성경을 다시 압수당할 것을 생각하여 마태복음 5~7장을 암송한 다음 빌립보서와 요한계시록, 데살로니가전서 전부를 암송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차고 넘치니 걱정 근심이 있을 수 없었다. 목사들이 주일 작업을 거부했다고 하여 악질 목사로 몰아 한 방에 몰아넣고 3.1운동 당시 순사였던 반역자 2인을 같이 있게 한 후에 우리 방을 악질 방이라고 불렀다. 각 기관에서 ‘악질 방’을 찾아와 묻는다.

“무슨 죄로 들어왔소?” “나는 모르는데 반동 죄라고 합니다.” “그동안 얼마나 반성했소?” “반성 여부가 없소. 죄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들은 노발대발하며 “그러면 죄 없는 너희를 북조선최고인민위원회가 죄를 씌워 투옥했다는 말이냐?” 진리를 수호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하나님의 대언자인 목사가 불의 부정부패를 지적하고 회개하라고 한 것이 무슨 잘못인가?”

그들은 말문이 막혀 “에이 악질들” 하며 물러갔다. 어느 날 지형순 목사의 제안으로 심령부흥회를 열게 되었다. 강사는 김홍순 목사로 결정되었다.

성경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정한 모양이다. 천로역정을 강론하라는 것이다. 크리스천이 장망성을 떠나 천성을 향하는 노정을 강론할 때에 우리의 마음에 큰 부흥을 받고 피곤하던 심령이 새 힘과 용기를 얻어 감사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반드시 악마도 역사한다. 그날 밤, 간수가 김홍순 목사를 끌어내 “무슨 기도를 했나?” “하나님의 뜻대로 남북이 통일되어 속히 건국되기를 빌었소.”

간수가 김진수 목사를 위협하기를 “너희가 말하기를 왜정시대에도 일본이 망하고 조선이 독립되라고 기도했더니 그대로 되었으니, 북조선 빨갱이가 망하고 이승만 정부가 수립되라고 기도했지?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죽인다”며 시멘트 바닥에 꿇어 앉히고 허리를 발로 차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며 발광하더니 들어가서 잘 생각하고 내일 아침 바른대로 실토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위협한다.

그러나 김 목사는 매를 맞으면서도 감사했다. 이렇게 매라도 맞고 나아가야 설교할 때 간증 거리가 되지 않는가, 생각했다. 김진수 목사는 얼마나 매를 맞았는지 고막이 터졌고 지형순 목사는 어깨가 부서지도록 맞았다.

모진 고문을 당한 것은 한방에 같이 있던 왜정시대 순사 출신 반역자가 허위보고를 한 까닭이었다.

간수는 허위보고자를 그 밤으로 분방을 시켰다. 한의원 목사를 뒤로 결박한 채 캄캄한 독방에 넣었다. 식사 때에도 풀어주지 않았다. 한의원 목사가 4개월이 지나 만기출옥을 했는데 손이 앞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 세 목사는 이감됐다. 김홍순 목사와 김진수 목사는 본궁 교화소로, 지 목사는 평양 근처 승호리 암광교화소로 이감되었다.

3일간 평양교화소에 머물러 있는 동안 새로운 뉴스가 들어왔다.

소내 부소장을 비롯하여 몇몇 간수와 죄수 및 사상범들이 비밀결사하고 외부와 연락하여 교화소를 뒤집어엎으려고 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었다.

주범으로 몰린 김윤우 목사를 그 추운 겨울에 팬티만 입혀 독방에 가두고 냉수를 뿌려서 덜덜 떨면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한다.

1948년 10월경에 본궁 수용소로 이감되어 주로 군수품을 운반하는 일을 했다. 그때 함흥교회 조기함 목사의 면회는 참 위로가 되었다. 김진수 목사는 흥남 비료공장으로 이감되고 김홍순 목사는 함흥교화소로 이감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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