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리 나 되는 곳에 서수라교회 설립”

웅기성결교회(함경북도 경흥군 웅기읍 웅기동 118-1)는 1929년 2월 리정순 전도사를 파송하여 설립하였다. 예배당과 주택을 겸용할 만한 12간 가옥을 세로 얻어 9간은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3간은 주택으로 사용하였는데 150여 명을 수용할만하였다.

4월 14일(주일) 결심 자 10여 명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고, 두 달 후에는 신자의 수가 50여 명으로 늘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은 ‘신자 가정예배일’로 정하고 교역자 외 남녀신자가 총출동하여 신자 가정을 순번으로 돌아가며 모였고, 매주 토요일은 성경공부회로 모여 성경의 진리를 배웠다.  

웅기교회는 설립과 동시에 ‘소아 전도회’를 열어 70여 명의 어린이들이 모여 주일학교 첫 예배를 드렸다. 6월 22일에는 최석모 목사의 주례로 세 형제와 두 자매에게 학습예식까지 거행하였다.

7월 3일에는 류경옥 전도부인이 부임하였고, 11월에는 남녀 신자들이 전도회를 조직하여 전도에 힘썼다.  1930년 2월 23일(주일)에는 남녀 13인이 학습을 받았고, 지난 9개월간 무기청신기도회를 통해 은혜 받은 자 중 다섯 형제가 합력하여 예배당 안에 전등을 달았다.

4월 13일(주일)에 ‘창립 1년 기념예배’를 드렸다. 매 주일 오후에는 노방과 시장에서 전도하고 저녁에는 큰 등을 높이 들고 길거리에서 광고한 후 옥내집회를 하는 중 많은 결심 자를 얻었다.  

1931년 1월 5∼6일은 소아부흥회를 열고 200여 명의 아동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송평동기도소’와 ‘백학동기도소’를 열었다.

또한 ‘송평동기도소’를 위해 1년에 30원이란 돈을 들여 송평동 중앙에 와가 4간을 세로 내고 손홍두 집사를 담임으로 파송하였는데 첫 예배에 장년 74인과 주일학생 50여 명이 모였다.

7월에는 남녀교역자와 제직과 일반 신자들이 60리 나 되는 ‘서수라(西水羅)’에 가서 열렬한 기도와 맹렬한 전도 활동으로 7, 80명의 신자를 얻어 ‘서수라교회’를 설립하였는데 성서학원에 수양 중인 조승각 형제가 임시교역자로 사역하였다.  

1932년 9월 5∼10일 강송수 목사의 인도 하에 부흥회를 열고 중생한 자 9인, 성결한 자 14인, 결심 자 18인을 새로 얻었으며 신유의 은혜까지 임하여 소아가 병중에서 일어남과 사귀병자가 곧 나음을 얻었고 예배당 대지 구입헌금이 308원이나 되었다.

1934년 300명을 수용할 수 있게 예배당을 증축하는 동시에 남녀교역자 주택도 새로 건축하였다. 1934년 1월 8∼14일 리건 목사의 인도로 부흥회를 열었는데 마지막 날에는 실로 오순절 광경을 연상하게 되었으며 각 교파에서 모인 자는 모두 성신의 술에 취하게 되었다.

1월 20일에는 사무총회를 열고 ‘전 자급’을 실시하기로 결의하고 또한 문기선, 리종관, 양형을 씨의 장로 장립을 청원하기로 결의하였다.  1937년 3월 13일부터 한 주일간 ‘테트 선교사’의 인도로 매일 3차씩 250∼300명에게 큰 은혜를 끼치었다.

1938년 2월 16∼21일 김영균 목사의 인도로 부흥회를 열었는데 폭풍설임에도 불구하고 장로교 신자들까지 열심히 모여 풍성한 은혜를 받았으며 교회당 건축을 위해 1,100원이 헌금 되어 대지 248평을 549원 5전에 매수하고 건축 설계를 시작하였다. 

1939년 11월 15일부터 1주간 김진문 목사의 인도로 부흥회를 열어 큰 은혜를 받는 중 새로 믿기로 결심 자가 80여 명이나 되었다. 웅기교회는 1943년 12월 29일 성결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