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25~32)

이 세상에는 법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기다림의 법칙’입니다. 농사를 짓는 것도,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도, 신앙생활에도 기다림의 법칙이 있습니다.

잘 기다리지 못하면 농사를 망칠 수밖에 없고, 자녀를 양육하고 훈육할 때 기다림의 법칙을 모르는 부모는 그 자녀를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기다림이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바라며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기다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약으로부터 메시아의 오심을 약속하고 예언하셨습니다. 오래전부터 약속된 말씀이지만, 그것을 믿고 기다렸던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시므온이라는 사람과 이어서 안나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짐을 기다리며 오실 메시아를 기다렸던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온은 내가 죽기 전에는 이 땅에 메시아가 오심을 꼭 보아야 할 것이라는 기다림을 가지고 있을 때, 마침내 예수께서 이 땅에 탄생하심을 보게 되었고, 보게 된 그 마음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리게 됩니다.

안나 선지자는 결혼한 지 7년이 되어서 남편을 먼저 보낸 후 팔십이 넘도록 홀로 살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약속을 언제 이루어주실까 고대하며 그의 눈이 어두워지고 기력이 쇠하여지면서도 오랜 시간 기다리다 예수의 탄생을 듣게 되고 만나게 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그 시간이 결코 만만한 시간이 아닙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씨를 뿌려놓고 가을까지 기다리는 것, 예쁜 아기를 낳고 그 아이가 삶을 찾아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 그 사업에 성공을 이루기까지 기다리는 것,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습니다. 언제 그 기다림의 끝이 올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인생의 길을 갈 때 어떤 사람은 신념을 갖고, 어떤 사람은 확신을 갖고, 어떤 사람을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기다림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다림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 성경은 두 종류로 말씀합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한 종류는 깨어 기다리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한 종류는 졸며 자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졸며 자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기다리기는 기다리지만, 신랑이 오는 것보다 세상의 좋은 것에 취해있습니다. 세상 재미와 육적인 즐거움에 취해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잠들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다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반면에 깨어 기다리는 다섯 처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신랑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세상의 다른 것에는 눈을 팔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것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세상의 즐거움, 유혹, 어떠한 것도 이겨내고 참으며 오직 신랑만을 생각하고, 신랑이 온다는 그날을 기다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랑이 어느 날 갑자기 왔습니다. 왔을 때 잠자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고, 그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났지만, 신랑을 깨어 기다렸던 사람들은 신랑과 함께 잔치에 들어갔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 기다림 속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까? 밀려오는 졸음을 견뎌야 합니다.

깊이 잠드는 자신을 깨워야 합니다. 우리를 잠들게 하려고 하는 세상의 피로감과 세상의 일은 계속해서 밀려오고, 세상의 유혹과 풍조는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결국, 그러다가 열명 가운데 반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유혹에 빠졌습니다. 평생을 기다리며 평생을 준비하는 삶으로 산다는 것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메시아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즉, 기다림에는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2021년도 마지막 한주가 남아있습니다. 시작할 때가 엊그제 같았습니다. 그런데 벌써 봄, 여름,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언제까지 해야 하나 하는 그 시간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다 지나가고, 기다림의 시간의 끝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것, 축복을 받아보는 것, 그 모든 것에는 기다림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복을 받게 됩니다. 시므온과 안나가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다가 복을 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신부인 교회요 성도인 우리는 어떻게 기다려야 할까요? 근신하며 깨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근신한다는 것은 세상의 미혹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그러한 사람으로 자기 자신을 단속하며 믿음을 단속하고, 자기의 생활을 단속하여 세상에 취하지 않게 자기를 지켜가는 것이 근신한다는 것입니다.

깨어있다고 하는 것은 지금 이때가 어느 때인가를 분별하고, 신앙인으로서 세상에 되는 일들을 보면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모습이 깨어있는 모습입니다.

기다림 끝에 시므온과 안나와 예수님을 기다렸던 사람들에게 메시아의 오심은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다려지고, 말씀이 이루어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흑암 중에도 빛을 볼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고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소망을 품은 그들은 기다리는 시간이 지치고 힘든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결코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은 깨어있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고 약속을 성취하시는가를 봐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만약 믿음이 흔들린다면 그럴 때마다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밑받침되어야 잘 기다릴 수 있습니다. 성탄 주간이며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주간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기다림은 어떤 기다림입니까? 믿음의 기다림입니까? 아니면, 포기한 기다림입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기다림은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십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세상의 유혹과 쾌락에 취해 있으면 안 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나 자신을 때려서라도, 나를 깨우고 세상에 빠지지 않고, 다른 신랑에게 내 마음이 빼앗기지 않도록,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 기다림은 여러분들에게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다림은 이후에 축복이 될 것이고, 영광되며, 여러분들은 그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올 일 년 나는 어떻게 기다렸는가를 되돌아보며 한 해를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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