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이전과는 달리 매우 어렵고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된 소망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참된 소망을 갖고 살 수 있을까요?

먼저,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7절에 “소망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받는 고난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온전한 성도로 살고자 한다면 고난의 참여는 필연적입니다. 또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성령님이 주시는 위로를 받습니다.

본문에 아홉 번이나 나오는 단어 ‘위로’는 헬라어로 ‘파라클레세오스’입니다. 이 단어의 명사형 파라클레토스는 우리의 위로자 되시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지칭할 때 사용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는 곳에는 상한 심령, 낙심한 영혼,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위로가 넘치게 됩니다. 또한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곳에는 육신의 고통과 삶의 모든 문제로 짓눌린 이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나아가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고난을 상급으로 바꾸는 절대적 믿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살 수 있으리라는 소망이 다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난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고난의 한 복판에서도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면, 현재 당하는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절대적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은총을 주시고, 그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사는 온전한 성도는 다른 이들이 오직 하나님께만 바라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 해도 우리의 시선은 온전히 하나님께로만 향하길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역사하실 것입니다.

역대하 8장 1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여기서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것은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향함을 뜻합니다. 우리의 모든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이 땅에 은총을 베푸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여러분,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동행하며 깊은 교제를 하고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의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진심어린 시선이 존재하고, 하나님을 향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삽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참된 소망을 가진 성도가 되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기쁨을 누리며 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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