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의 피 위에 신앙결실 맺어
증조부부터 5대째 신앙
군위교회 101년 역사 함께 일궈

노성종 장로(군위교회) 가정은 자녀들까지 군위교회에서 5대를 이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3대째 장로로 교회를 섬기며 믿음의 길을 가고 있다.

노 장로는 조부 고 노도봉 장로(후에 목사안수 받음)부터 시작해 부친 노태화 원로장로를 이어 3대 장로의 영광을 얻은 것이지만 증조부 노성문 집사의 순직이야기는 군위교회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증조부 노성문 집사는 한학자인 부친에게서 유교 교육을 받고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예수를 믿어 군위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이후 부모와 집안의 혹독한 박해를 받아 집안에서 쫓겨났으나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신앙생활에 매진하여 농번기에도 40~50십리 떨어진 교회서 한 번도 안 빠지고 주일을 성수했다.

1929년 43세에 세례를 받고 1930년 집사로 임명을 받아 교회 일에 충성을 다했다. 군위교회는 1936년 강시영 목사를 초청해 교회 건축을 위한 부흥회를 열고 건축헌금이 무난히 작정되어 성전 건축공사를 결정했다.

그 다음해인 1937년 노 집사가 앞장서서 구교회당 건물을 철거했는데 건물이 붕괴되면서 그를 덮쳤다. 이 때 담임목사인 이종익 목사는 사고 3일만에 소천했고 노 집사도 42일 만에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그가 흘린 헌신의 피 위에 첫 예배당은 건축됐고 2007년 등록문화재 291호로 지정돼 지금도 성도들의 신앙을 일깨우고 있다.

군위교회는 그와 이종익 목사의 순직을 안타까워하며  1990년 11월 교회 설립 70주년을 맞아 고 이종익 목사와 노 집사의 순교기념비를 세웠다.

지역 복지사역의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가문의 자랑이다.

조부 노도봉 장로는 군위지역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며 소외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했다.

그는  장로가 된 뒤 뒤늦게 목회사역에 대한 소명을 받아 신학대학을 입학,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한인교회를 목회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2대 노태화 원로장로는 장로장립 이후 30년간 군위교회에서 시무하며 교육선교관 건축과 100주년 역사편찬, 교육, 선교사업 등에 헌신해왔다.

노태화 장로는 교회사역 외에도 경북지방회 부회장, 경북지방 장로회장, 군위군기독교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지방회 발전과 교회연합 사역에도 힘을 써왔다.  

노태화 장로는 젊은 시절 마산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준비하던 중 부친 노도봉 목사의 도미 후 고향 군위로 내려와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했다.

부친이 운영하던 고아원이 없어지고 난 뒤 군위지역에는 아이보육시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노 원로장로는 이를 감안해 군위어린이집을 설립했다.

이후 35년을 한결 같이 어린이집 사역을 펼쳤던 노 장로는 2007년 30년 이상 보육사업에 종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노 장로는 또 2009년 ‘SMS그린힐 군위노인요양원’을 설립하고 노인복지까지 사역을 확장했다.

군위군 대북리 5610㎡(1,700평) 대지에 1551㎡(470평) 규모로 지어진 군위노인요양원은 장애·치매노인들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고 있다.

노 장로는 또 건축위원장 시절인 지난 2010년, 군위교회 창립 90주년을 맞아 첫 예배당 문화재 등록 및 본당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봉헌하는 기쁨도 맛보았다.  

노성종 장로는 부친 노태화 장로가 경영하던 군위어린이집을 이어받아 경영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전국에서 저출산율이 손꼽힐 정도인 군위에서 100여 명의 어린이들을 보육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노 장로는 “증조부부터 시작된 신앙의 유산이 5대째 이어져 왔다는 건 하나님의 큰 축복”이라며 “남은 인생도 군위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힘쓰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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