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부작용으로 들불처럼 일어난 아시안 혐오가 여전히 미국사회 안에 핫이슈가 되고 있다.

아시안 혐오범죄 숫자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어서 속히 잠잠해지기를 기다리지만 당장 그리 쉽게 사그러들 기세가 아닌 것 같다.  

미국은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회교도의 발흥으로 지중해의 무역이 막히자 유럽의 나라들은 아메리카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아메리카는 유럽인들에 의한 식민지로 시작하여 오늘날의 미국을 비롯한 독립 국가들을 이루게 되었다.

처음에는 원주민들을 강제로 몰아내었고, 노동력의 대안으로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데려와 아메리카를 건설했던 배후에는 백인우월주의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뿌리 깊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들은 주류라는 사상으로 스스로를 무장한 채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을 주변인으로 정의하여 담을 쌓고 구분하면서 끝없이 경계해왔다.

세계에서 최고로 자유민주주의가 발전된 나라라고 하지만, 아직도 이 근본적인 편견은 깰 수 없는 높은 유리천장으로 존재한다.

오늘날의 아시안 혐오 역시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미국 땅에서 디아스포라(Diaspora)로 살아가면서 항상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본인에게는 외국인들에 대한 대한민국의 배려와 생각에 관심과 눈길이 머무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감사하게도 현재의 한국과 한국교회는 적어도 외국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미국처럼 폭력성에 길든 주류의식으로 강하게 도색되고 있지는 않다는 안도의 마음을 갖게 한다.  

구약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였던 롯이 머물던 소돔성에 어느 날 저녁 두 명의 나그네가 방문을 한다. 롯이 그들을 자기 집으로 초청했을 때 소돔성에 살던 남자들이 몰려와 그 나그네를 우리가 상관(?)할 테니 우리에게 내어 달라고 소리를 친다.

롯이 그들을 만류하자 소돔 사람들이 롯에게 ‘이놈이 자기도 나그네살이를 하는 주제에 우리에게 재판관 행세를 하려고 든다’라고 하면서 화를 낸다.

‘롯은 20년 이상 소돔 땅에서 살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한 평의 땅도 소유하지 못했다. 그의 삼촌인 아브라함 역시 죽은 부인을 매장할 땅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소돔 사람들에게 롯은 철저하게 나그네였다. 주류인 소돔인들에게 롯은 재산이나 거주 연한과 상관없이 비주류였을 뿐이다.

롯의 손님인 외지에서 온 나그네들을 모욕하여 길들이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들이 비이성적이고 무비판적인 외지인(외국인) 혐오에 붙들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미국에서의 아시안 혐오는 그 근원이 뿌리가 매우 깊다. 오늘날 혐오의 대상이 되어 살아가는 미국의 코리안들이나 조국에서 사는 우리들이 서로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 땅에서 나그네라는 사실이다.

일찍이 다윗이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고 했던 것처럼, 어디에서 살든 세상에서는 나그네요 사는 날이 그림자 같다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나그네로 사는 것은 길 위에서 사는 것과 같으며 그 길은 머물러 사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하여 걸어가는 도상의 현실이다.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움직이는 흐름이다.

내 삶이 ‘나그네살이를 하는 주제’인 것을 항상 기억하면서 함께 걸어가는 길 위에 서 있는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인종과 상관없이 그들을 품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기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런 삶이 가장 구체적인 복음에 합당한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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