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고독의 사이에서(창세기 32장 22~28절) 

     하도균 교수
      (서울신대)

현대사회에서 외로움은 현대인들에게 일반적인 정서가 되어버렸습니다. 혼자 있는 경우가 잦아지고, 결혼을 하지 않는 미혼의 상태가 늘어나, 혼밥, 혼차, 혼숙 등의 유행어를 낳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부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이러한 인간의 또 다른 본질적인 사실을 알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점은 긍정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혼자인 상태에 대해서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혼자 독식하길 원하지만, 소외감은 싫어합니다. 그래서 혼자가 좋다고 하면서도 마냥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성경은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먼저 외로움과 고독은 구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이 힘들고 자신을 점점 파괴한다고 느껴진다면, 이러한 감정은 ‘외로움’입니다.

그러나 혼자 있음으로써 새로운 상상력이 솟아나고 창조의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다면, 이것을 ‘고독’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즉, ‘외로움’은 사회 속에서 소외되어 어느 누구도 관심갖지 않는 철저히 격리된 상태라고 한다면, ‘고독’은 홀로된 상태에서 긍정적으로 홀로된 자신을 누리고, 또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스스로 자발적 격리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도시 사회는 우리를 외로운 상태로 수없이 몰아가면서도 고독한 상태로 진입하는 것은 철저하게 막고 있습니다.

즉, 우리를 외로움의 광야에 붙잡아둔 채, 고독의 동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철저하게 봉쇄합니다.

왜냐하면 고독의 상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독의 시간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고독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필요조건 입니다. 그래서 고독은 ‘신의 자리’라고도 불려집니다.

고독으로 들어가면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독의 자리가 바로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임을 알게 되면, 이제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하여 스스로 고독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고독할 자유를 선택하는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위대한 신앙의 위인들이 홀로 묵상하고 고독의 시간을 가졌던 이유도 다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성경의 본문(창 32:22-28)에 보면, 얍복 강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야곱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때 처음 하나님을 만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벧엘에서도 혼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을 만났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벧엘에서 홀로였던 야곱의 모습은, 스스로 원해서 된 홀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가족을 떠나야만 해서 생겨난, 처음으로 겪는 물리적인 홀로의 시간이었습니다. 즉 외로움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혼자된 야곱, 외로움 속에서 힘들어하던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로부터 20년 후,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납니다. 그때에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도 있고 재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만나, 모든 것을 먼저 보내고 스스로 홀로가 되었습니다. 이때 야곱은 또다시 혼자 있는 시간을 갖지만 그 시간은 외로움의 시간이 아니고 고독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의도했든지, 의도하지 않았든지, 스스로 혼자 남은 선택을 한 고독의 시간이었습니다.

얍복(‘야보크’라는 단어에서 옴)은 ‘쏟아내다’ ‘텅비다’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그러므로 얍복은 쏟아내는 곳, 비우는 곳입니다.

즉 얍복강은 쏟아내지 않고, 비우지 않고 건널 수 없는 강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신앙의 여정에서 경험해야 할 십자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온전히 비우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그러므로 이 강을 건너야, 이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얍복을 경험하고 나면, 이제 스스로 얍복을 찾아 들어가는 사람이 됩니다. 내 영의 불순물, 찌꺼기들을 쏟아내고 얍복에서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그때 얍복은 하나님 편에서 씨름을 걸어오시는 얍복이 아니라, 내 편에서 하나님께 씨름을 거는 얍복이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찬란한 고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고독이라는 십자가는 나를 진리이신 예수께 데리고 가기도 하지만, 일단 진리를 만나고 나면, 이제는 진리가 나를 고독하게 하여 하나님과 나만 단둘이 만날 수 있는 십자가 앞으로 데려갑니다.

이리저리 도망 다녀 보고 외면도 해보지만, 결국 고독과 사귀어 삽니다. 홍해를 건넌 후, 홍해 저편 애굽을 기웃거리지 맙시다.

요단을 건넌 후, 정복 전쟁을 하지 않은 채 편히 살겠다고 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이렇게 살면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찬란한 고독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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