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설교학의 두 흐름 강해설교 vs 귀납적 설교

설교는 교회의 심장이며, 모든 목회자의 공통된 관심이다. 그러나 설교에 대한 관심으로 설교학 책을 잡으면 예기치 않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왜냐하면 설교학자마다 그 주장이 상반되거나 결이 서로 다른 경우를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 설교학을 형성하는 두 흐름, 곧 강해설교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연역적 설교와 내러티브 설교로 대변되는 귀납적 설교의 관점 때문이다. 이에 이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두 설교자의 책을 통해 이 대류(大流)를 이해하는 것은 설교의 여정에 유익할 것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설교와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M. Lloyd-Jones)의  「설교와 설교자」(Preaching and Preacher)는 전통적인 강해설교의 정신에 입각한 대표적인 책이다.

이 책은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설교자였던 로이드 존스가 42년 간의 목회사역에서 은퇴 후,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의 행한 설교학 강연을 엮어 만든 책이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강해설교가라는 평가답게 로이드 존스는 이 책에서 성경적이며 역사적이며 목회적인 관점에서 설교의 영광과 그 정수에 관해 맛보게 해준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갖는 장점 중 하나는 많은 설교학 책이 간과하거나 소홀하게 다루는 설교의 본질과 그것에 임하는 태도에 관해 심도깊게 다룬다는 점이다.

곧 설교라야만 하는 설교의 긴급성과 확신, 설교의 영광, ‘다른 것은 전할 수 없다’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막중한 책임의식과 같은 설교의 저변에 자리한 본질적인 요소를 성경적이며 웅변적인 방식으로 들려준다.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된다. 또한 로이드 존스는 설교 사역을 중심에 두고 교회와 목회사역 전반과 관련된 넓은 스펙트럼으로 강단의 자리를 바라본다.

곧 설교자 자신과 설교문의 준비, 복음으로의 초청과 결단에서의 문제, 그리고 설교의 함정과 낭만, 피해야 할 요소 등 설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조언하는데, 이는 그가 단순한 설교학자가 아니라 현장 목회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훌륭한 점은 설교학이 거의 다루지 못하는, 그러나 설교의 사활을 거는 강단에서의 설교 행위와 성령에 관해 실제적인 조언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로이드 존스는 5장의 ‘설교행위’에서 강단에서 실제로 설교할 때 설교자가 취해야 하는 자세에 관해 섬세하게 다룬다. 곧 설교 작성법이 주로 논리와 논증과 관련된 로고스의 요소를 다루고 있다면 설교문을 강단에서 전할 때 반드시 개입되어야 하는 설교자의 전인과 파토스(pathos)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특히 그가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은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오랜 설교자들이 경험하듯, 참된 설교에는 지식과 언변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다. 사도들의 설교에서 보듯, 설교의 승패를 거는 결정적인 요소가 성령의 기름부음과 성령의 역사라고 할 때, 로이드 존스의 책은 설교에서의 성령에 관해 신뢰할만하며 실제적인 조언을 담고 있는 몇 안되는 설교학책이라 할 수 있다.

참된 설교는 세상과 교회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며, 이러한 일을 행하는 설교자의 책무는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 “불타지 않는 신학은 결함이 있는 신학이요, 참된 신학은 반드시 불타게 한다”하는 그의 말처럼, 설교는 ‘불타는 신학’(Logic on Fire)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도 있다. 전통적인 설교학이 대개 그러하듯, 그것은 성경에 지나치게 집중하느라 청중의 자리와 설교의 전달법에 관해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설교학에서 획기적인 새로운 전망을 제공한 이는 F.B. 크래독(F. B. Craddock)이다.

  F. B. 크래독,  「권위없는 자처럼」

설교학의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이라 말하는 크래독의 「권위없는 자처럼」(As One without Authority)은 문자 그대로 전통적인 설교학의 관점을 완전히 새롭게 접근한 책이다.

크래독의 기념비적인 이 책이 출판되면서 ‘새로운 설교학 운동’(The New Homiletics)은 본격적으로 내러티브를 비롯한 설교의 다양한 형식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크래독은 기존의 전통적인 설교가 청중의 자리와 회중과의 소통을 소홀히 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귀납적 설교방식을 제안한다.

주지하다시피, 귀납적 설교 방법은 전통적인 연역적 방법과 달리 인간의 특별한 경험으로 시작하여 복음의 놀라운 결론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청중의 자리와 설교의 전개에서 움직임(movement)을 중요시한다.

크래독은 “귀납적으로 전개되는 설교는 무엇보다 청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설교하는 동안 그 관심을 지속시켜준다”고 강조한다.

크래독의 주된 관심은 청중에게 어떻게 설교가 들리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설교자들은 ‘그들에게’(to), ‘그들을 위해’(for)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며, 삶 속에서 말씀의 사건이 경험될 수 있도록 돕는 자이기 때문이다.

귀납적 설교에서 그것의 온전한 사용을 위해 주목할 것은 이러한 방법론의 배후에 자리한 태동 배경과 그 정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크래독은 현대의 급변하는 문화적, 사회적, 사상적 변화에 주목한다.

곧, 교회 언어의 실패, 미디어의 변화로 인한 영상 시대, 변화된 설교자와 청중과의 관계와 같은 요인들은 강단의 변화의 필요성을 요구하며, 이에 설교자가 권위를 내려놓고 청중과 함께 나아가는 귀납적 방법으로 나아가야 함을 제안한다.  

본질과 그릇

현재, 설교학은 전통적인 강해설교와 내러티브로 대변되는 귀납적 설교로 양분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강해만이냐, 내러티브만이냐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진리를 담는 그릇의 문제이지,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설교의 형식 자체가 신봉할 진리는 아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위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된 것같이, 본문과 청중의 성격에 따라 보다 유연한 태도로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고전 9:20)

첨언하자면, 설교에 입문하는 이들은 본문에 대한 깊은 연구를 강조하는 강해설교로 시작하여 귀납적 설교, 내러티브 설교로 발전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곧 탄탄한 성경 연구의 기반 하에 귀납적 설교와 내러티브 설교로 뻗어나갈 수 있다면, 문화 속으로 메시지가 표류하거나 함몰되지 않고 보다 안전한 궤도를 따라 항해하며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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