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선교는 나라와 민족를 구하는 길이었다"

지난 40년간 직장선교에 매진해 온 우리나라 직장선교의 산증인 박흥일 장로를 만나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의 태동부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직장선교를 통한 평신도 운동의 나아갈 길을 찾아봤다.

1942년 평택에서 태어난 박흥일 장로는 근대사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가난한 국가경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성장기였음에도 그는 스스로 각고의 노력과 인내로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기독교적 가치로 한국 정치를 발전시킨다는 꿈을 가지고 중앙부처의 공직사회에 투신해 정치사회의 그리스도화와 각계 직장사회의 복음화를 위해 직장마다 신우회를 조직하고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를 창립해 한 평생 직장선교운동에 헌신했다. 그는 중앙청사, 과천청사에서 차관급 공무원을 지내기까지 34년 동안 능력있는 공무원이면서 직장 내에서 기독교인의 본이 되었다. 또 영국정부 장학생으로 유학했던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해외 파견 근무를 통해 해외에서의 직장선교에 대해 꿈꾸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워싱턴 직장선교연합회를 시작으로 미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영국, 독일 등의 직장선교연합회 창립을 도왔다. 현재 한직선 소속 국내 직장선교회는 8,000개가 넘는다. 그의 작지만 굳은 신념으로 시작된 꿈이 한국을 넘어 세계로 퍼진 것이다.  박 장로는 한직선 초대회장 외에도 세직선 설립자, 직장선교사회문화원 설립이사장, 성청 및 한기청 전국연합회 회장, 77민족복음화대성회 청년분과위원장, 엑스포93 세계선교협의회 대표회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부회장, 서울대학교 기독교총동문회장 등 교단 내외에서 교단의 위상을 높여왔다.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가 올해 40주년을 맞았다.  소개를 부탁드린다.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이하 한직선)는 1981년 창립되어 직장선교를 통한 민족복음화, 세계선교의 비전을 품고 40년을 달려온 단체다. 말씀과 기도에 의한 생활과 봉사, 초교파 평신도 연합운동, 정치적 중립, 노사 협력의 촉매제 화해자 역할, 교회와 사회의 십자가 가교역할 등을 위해 노력한다. 올해 40주년을 맞아 전국대회, 찬양예술제, 비전포럼 등 다양한 기념행사·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직선 설립을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직장선교를 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1960년대 초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4.19 의거와 5.16 군사쿠데타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과 국가를 구출할 길은 없는가’를 고민했다. 하나님께선 마음속에 ‘우리나라 정치사회의 그리스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답을 주셨다. 이것이 요셉의 꿈과 같이 나의 평생 꿈과 목표가 되었다. 이를 위해 서울대 사범대학에서 행정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곧바로 정부 중앙부처의 공직 사회에 투신하게 되었다. 직장사회의 복음화를 위해 가는 곳마다 직장신우회를 조직하고 한직선을 창립해 직장선교운동의 씨를 뿌리게 됐다.

한직선 창립 당시 공무원 신분이었는데, 활동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1978년 우리나라 정치 행정부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세종로의 정부종합청사 19층 회의실에서 처음으로 찬송과 기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과학기술처 기독신우회가 창립된 것인데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후 종합청사 바로 뒤에 있는 종교교회에서 나원용 목사의 특별한 관심과 협조로 목요정오직장인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한직선 창립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1981년 12월 한직선의 창립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광야를 개척하는 것처럼 시련과 연단의 과정이었다. 사무실도 없고, 돈도 없는 상황일 뿐 아니라 한직선보다 훨씬 먼저 도시산업선교회가 생겨서 공장의 직원들을 상대로 노동·인권 문제에 치중하던 때였다. 당시 Y·H사건 등 사회적 혼란이 일어난 후였기 때문에 직장선교가 도시산업선교와 유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아 직장선교가 순수한 복음선교운동이란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힘들었다.

창립 후 40년 지났다. 그동안 직장 내외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해왔나?

직장 내 신우회 조직 및 활동을 기본으로, 지역교회에서 주중에 드리는 직장인 정오예배를 돕고 지역사회의 고착화된 제사 및 고사 미신추방운동, 고난주간 중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헌혈운동, 올림픽 등 국제적 행사 시 직장선교를 국내외에 알리기 위한 홍보활동, 매년 가을 전국 지역 및 직능단위의 예술제와 직장선교대회, 불우이웃돕기, 외국인유학생 초청 위로잔치 등을 펼쳐왔다.

한직선을 40년간 이끌어오시면서 맺은 결실이 있을 것 같은데, 소개해 달라.

한직선을 설립한 지 7년만인 1988년 직선대를 설립해 직장선교사를 매년 훈련, 배출했다. 1993년에는 엑스포93 세계선교대회를 대전에서 개최하며 같은 기간 중 세계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세직선)도 설립해 직장선교의 지경을 전 세계로 확장시킬 수 있었다. 1998년에는 한국기독공직자선교연합회와 한국기독교직장선교목회자협의회까지 창립하여 직장선교의 큰 골격을 갖추게 되었고  2018년에는 30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하던 직장선교사회문화원까지 내가 기부한 3억원을 기금으로 우선 설립하게 되어 사회문화 영역까지 직장선교의 지경을 확대해 봉사하게 됐다.    

코로나19로 일터에서의 선교가 더 절실해졌다.  향후 직장선교의 방향에 대해 제언한다면?

직장선교의 4대 특성은 평신도, 평일(6일), 직장(삶의 현장), 말씀과 기도, 전도 중심이다. 한국교회가 모이는 교회, 건물 중심의 교회, 보이는 교회라면 직장선교는 흩어지는 교회,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보이지 않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직장선교의 특성은 코로나19 시대에 적합한 선교형태다. 교회에 모이지 못하는 때에 각자의 일터가 예배와 선교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 직장선교가 외롭게 사역을 해왔다면 코로나 시대에는 교회와 직장선교가 융합하고 협력하는 것이 살 길이다.          

일과 신앙이 분리되지 않고 소명의 자리로 만드는 방법은 없겠는가?

사실 신앙이 실제로 적용되는 곳은 성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세상이며 직장이다. 그러므로 직장생활이야말로 신앙이 적용되고 신앙이 훈련되고 성숙하게 되는 신앙생활의 현장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직장 안에서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신우회 모임에 힘쓰며 음주 중심의 회식문화를 근절하면서 부활절, 추수감사절 등 절기 때 계란나눔이나 전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교단과 교회에서 직장선교 활성화를 위해 더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교회의 특성은 교역자 중심, 주일 중심, 교회당 중심, 예배 중심이다. 직장선교는 평신도 중심, 평일 중심, 직장 중심, 성경과 기도, 전도 중심이다. 교회와 직장선교의 특성은 상대적으로 대칭 관계로 보이지만 이 둘은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다. 그래서 직장선교는 교회의 사명과 책임이다. 모든 성도들을 직장으로 파송한 평신도 선교사로 인식하고 이들을 훈련하고 사역에 대한 매뉴얼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교단과 교파를 초월한 직장선교 네트워크를 지원하고 평신도신학, 일터신학을 연구,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더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이 있는가?

대개는 현역 직장인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는데 사실 더 중요한 건 예비 직장인과 은퇴 직장인이다. 예비 직장인과 은퇴 직장인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면 직장선교를 위한 젊은 세대를 흡수하고 은퇴 직장인들의 연륜까지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이루고자 하는 것은 직장선교센터 마련과 재단법인화이다. 40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 중인데 30억 기금을 목표로 모금을 하고 있다. 현 직장선교사회문화원을 재단법인으로 등록 인가를 받아 그 재단이 직장선교센터를 운영관리하는 주체로 만들려 한다. 직장선교센터와 재단법인화 사업은 별개 사업이 아닌 ‘일심동체’ 하나의 사업이다. 대담=황승영 · 정리=남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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