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거나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라는 당찬 외침은 사람들에게 패기를 불어넣으려는 의도로 흔히 사용되는 관용구 중 하나이다.

이와 같은 도전정신은 세월의 흐름 속에 점차 노화되는 체력과 정신 상태를 극복하는 직접적인 동기로 작용하고, 삶의 의미를 증진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교회도 이와 비슷한 시대정신을 오랫동안 강조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잘 보여주는 성경 구절이 에베소서 5장 16절에 소개된 구절로 특히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인생에 관한 교훈을 줄 용도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이 본문을 해석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첫 번째 동사인 “아낀다”에 관한 상식에서 비롯된다. 즉 “귀중하게 여겨 함부로 쓰거나 다루지 아니하다” 또는 “소중히 여겨 자상하게 보살핀다” 등과 같은 사전적 의미를 통해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방법론을 지칭한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들은 신자들에게 분주하고 바쁜 삶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시간을 아끼라는 말을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삶의 자세라고 판단한 결과가 자연스럽게 그런 권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근면한 태도는 누구에게나 유익하고 긍정적인 덕목이다. 게으르고 무책임한 모습을 좋아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며, 특히 공동체 내부의 공적인 직책과 역할을 강조하는 상황이라면 열정과 성실로 무장한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당연한 까닭이다.

그러나 성경의 원어는 그보다 더 심오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먼저 아끼라는 한글로 번역된 “엑스아고라조”(ἐξαγοράζω)라는 그리스어는 단순히 바지런한 외양을 표현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밖으로”를 암시하는 접두어와 “시장”(market)을 뜻하는 명사의 합성으로 구성되었다. 이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시장 밖으로) 사서 나온다”라는 행위를 나타내며, 기독교 신앙적 의미를 덧붙여 의역하면 ‘대가를 주고 다시 찾아와 완전히 하나님의 소유로 회복하는 행위’를 상징한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과 4장 5절에서 몸값을 지급하고 풀어준다는 차원에서 “속량하다”라고 번역한 용어가 “엑스아고라조”라는 점을 볼 때, 세월을 아끼라는 에베소서의 문장은 더 명확하게 본래 취지를 드러낸다.

따라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열심히 살라는 일차원적 수준을 넘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인생 최우선의 목표로 설정하는 가치관의 변혁과 인생 갱신의 당부인 셈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어 크고 작은 결정과 선택의 절대적 기준과 토대로 작용하는 삶이 세월을 아끼라는 표현의 진의이다.

그런 신학적 강조점은 연이어 나오는 때가 악하다는 서술 속에 더 집약적으로 농축되어 있다. 여기서 “때”라는 말로 옮겨진 원어는 “헤메라”(ἡμέρα)인데, 이는 일반적인 “날”(日)의 복수형으로 아무 의미가 첨부되지 않은 하루하루의 연속을 지칭한다.

연대기적 시간 자체가 윤리적인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가정할 때, 진짜 말하고 싶은 저자의 요지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간 스스로 주인 행세를 하는 인류 역사는 사악한 본성을 지닌다는 명제에 있다.

정치적 야심과 경제적 욕망 또는 사회적 욕구 등이 하나님을 향한 신심을 앞지를 때, 성취와 업적 여부와 무관하게 그 삶은 이미 신앙적으로 악한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복종과 사랑으로 귀결되는 에베소서 5장 후반부의 내용은 세월을 아끼는 자세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행동강령이다.

결론적으로 세월을 아끼라는 성경의 권면은 자기 계발에 몰두하거나,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함으로써 남들보다 더 많은 결실과 열매를 거두는 높은 생산성과 효율성, 또는 정치 권력의 장악이나 높은 지위나 명예만을 지향하는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주권을 기꺼이 하나님께 맡기고 작은 일도 그리스도를 본받으며, 사랑과 복종을 진취적으로 실천하는 이가 세월을 아끼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다.

자본과 물질이 하나님을 대체하는 이 시대에 그처럼 세월을 아끼는 신자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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