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원리성결교회

예원리교회(함경남도 북청군 예원리 849)는 북청교회 신도들이 각촌(各村)에 다니며 전도한 결과 구도자를 얻게 되었다. 이에 동양선교회는 1922년 10월 22일에 김동훈 전도사를 파송하여 전도대를 조직하고 동네의 ‘공청(公廳)’을 빌려 전도한 결과 교회를 설립했다.

1924년에 예배당을 새로 건축했고 이후 교역자는 어포리교회에 주재하여 순회하게 하였다. 1925년 예원리교회에서는 수십 일간 청신기도회를 하여 오던 중 2월 16일〜20일까지 주순진 전도사를 청하여 부흥회를 열었는데 교회설립 이래로 처음 보는 성신의 맹렬한 역사가 나타나 주일학생부터 장년까지 무섭고 더러운 죄악을 주의 십자가 앞에서 통회자백하고 신생의 은혜를 받은 자가 10여  인이오, 락(떠났던)중에 있던 자 몇 사람도 다시 돌아와서 통회 자복함으로 생명을 다시 받고 전도의 열심히 일어났다.

1927년 2월 14일부터 19일까지 주임 전도사의 인도하에 부흥회를 열고 하루 세 번씩 모였는데 성신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반신자들이 큰 은혜들을 받는 중 성결의 은혜를 받은 자가 2인이며 또한 30원의 헌금으로 경종을 사서 달았다.

예원리교회는 1929년 8월 18일에 어포리교회, 간평교회와 연합하여 강송수 목사의 주례 하에서 8인에게 세례 예식과 6인에게 학습예식을 겸하여 성찬 예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다.

12월 13일 저녁부터 15일 저녁까지 김진문 전도사의 인도하에서 부흥회를 개최하고 청신기도회와 저녁부흥회로 모여 일반인도 성신의 역사로 많은 은혜를 받았다.

1930년 2월 13일 밤에는 김형식 전도사를 청하여 전도회를 개최하고 결심자 10인을 얻었다.

1931년 2월 5일〜6일까지 강송수 목사의 인도하에서 부흥회를 개최하고 일반인이 많은 은혜를 받는 동시에 새로 믿기로 결심한 사람 10인을 얻었으며 이번 집회 중에 세례 예식과 사무년회(총회)까지 있었다.

8월 20일〜22일까지 강송수 목사의 인도하에서 특별집회를 열고 일반이 놀라운 은혜를 받는 동시에 새로 믿기를 결심한 자가 15인, 타락 중에서 돌아온 이가 3인이나 되었다.

11월 26일 밤〜28일 오전까지 강송수·김경흡·조정현·박현이 씨를 초청해 대거전도회를 열고 매일 3차씩 집회를 열었는데 성신의 역사로 신자들의 심령에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동시에 신구도자 13인을 얻었다.

1932년 3월 14일 밤〜17일 오전까지 강송수 목사의 인도로 부흥회를 열고 매일 세 번씩 모여서 전무한 은혜를 받았다. 이번 집회의 결과는 중생자가 38인, 성결자가 10인, 신구도자가 22인, 무기기도 작정자 29인, 독경작정자 28인, 전도작정자가 19인, 헌신작정자가 27인, 헌금작정자가 23인이나 되었다.

1934년 음력 정월(1월) 8일〜10일까지 신래식 신임전도사의 인도로 전도회를 열고 45인의 결심자를 얻었다. 8월 23일〜4일간 리준수 목사의 인도 하에 부흥회를 열고 기도회, 사경회, 구령회를 하는 중 은혜가 풍성히 임하였고 새 결심자는 50명이나 되었다.

5월 28일 주일에는 함남지역 5개 교회 주일학교연합예배가 신북청교회에서 있었는데 주일학생 250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북청읍교회 조병결 선생의 유익한 설교에 많은 은혜를 받았다.

예원리교회에서 사역한 목회자들을 소개하면 김동훈 전도사(1922년 10월)에 파송되어 교회를 설립하였고 그 뒤를 이어 1925년 3월 정달성 전도사, 1927년 8월 주순진 전도사, 1929년 11월 김진문 목사, 1933년 1월 박태주 전도사 등이 부임하였다. 예원리교회 1943년 12월 29일 성결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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