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뜻하는 영어 단어 ‘author’와 ‘권위’를 의미하는 ‘authority’는 겉모양은 흡사하지만 느낌은 매우 이질적이다.

‘작가’는 창의성을 강조하며 자유로운 영혼을 지향하는 성격이 강하지만, ‘권위’는 질서를 내세우며 일사불란한 체계를 추구하는 이미지가 큰 탓이다.

물론 글쓰기 과정에 생성되는 작가들의 자부심과 독자들이 받는 영향을 고려하면, 나름대로 양자의 접촉점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부조화가 말끔하게 사라지지 않으면서, 거의 같은 모양을 지닌 두 단어의 뜻이 이처럼 다른 배경에 자연스러운 관심이 쏠린다. 이와 같은 궁금증은 두 단어의 어근에 관한 연구에서 풀린다.

두 낱말은 ‘증가하다, 확대하다, 인상하다’(to increase)라는 의미를 지닌 ‘aug-’로부터 파생되었다. 조금 더 풀어 의역하면 이 말의 어원에는 ‘외형적 성장 또는 내면적 성숙의 원인을 제공하는’ 역할을 지칭하는 의도가 잠재된 셈이다.

이런 해석을 따르면 ‘작가’(author)는 자신의 글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과 감성을 증가시키는 역할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권위’(authority)는 정치적 지배 또는 군사적 정복 등의 공격적 분위기가 아닌 공동체 구성원들의 성장과 생산성을 촉진하는 요소로 규정될 수 있다.

이는 권위를 지닌 인물의 궁극적 목적이 개인 욕망과 목적 달성에 집중하는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암시하는 한편 지도자는 동역자들에게 창의적 상상력의 여유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는 잠정적 명제로 이어진다.

물론 권위를 부여하는 배경과 정황이 다양한 까닭에 권위를 지닌 모든 이를 무조건 획일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인 고정관념과 다른 차원을 권위에 연관된 대부분 상황에 적용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즉 수직적 위계질서와 강압적 분위기에 의해 권위를 형성하는 전통적 방식 대신 독자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긍정하며 다양한 결론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권위의 진정한 가치로 상정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지도자의 지위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일목요연한 정확성을 요구하거나 그에 대한 신상필벌을 강요하는 매정한 자리로만 이해될 필요가 없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처럼, 지도자는 자율적이고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따뜻한 감성을 지니거나 새로운 도전을 치하하는 예술가의 심상으로도 그려질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말이다.

물론 출판과 판매 과정에 필연적으로 현존하는 상업주의를 작가의 삶과 완전히 단절할 수는 없다. 그래서 소위 작가 정신에 창의성만 담겼다는 순진한 발상을 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중의 심리를 파악하여 예술적인 작가 세계와 결부시키는 노력 역시 또 다른 차원의 창의성이라고 치장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도서를 구매하도록 동기를 제공하는 노력을 굳이 순수한 창조적 영혼과 구분하는 성급한 결론을 도출하지 말자는 의견을 나타낸다.

그리고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는 과정 전체를 작가의 삶으로 허용하자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권위라는 용어는 더 넓은 범주의 활동반경을 보장받게 되고, 지도자의 덕목 역시 넓이와 깊이 모두에서 훨씬 큰 진보의 개연성을 지니는 까닭이다.

글쓰기에 전념하는 이들에게 지도자 칭호를 붙이는 경우가 드물지만,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익숙하다.

권위와 작가는 이 지점에서 절묘하게 만나고, 어울리지 않는 그들의 융합은 자연스레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한다.

변변한 직함이 하나도 없었던 그리스도는 파격적인 행보와 독창적 해석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하나님의 가르침이 지니는 경계를 무한대로 확장하는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리스도의 지도력이 오늘날 정부와 교회 등에 널리 퍼지면 좋겠다는 순진한 꿈을 꾼다. 그래야만 서로 적대적으로 으르렁거리는 경쟁과 대결이 축소되고, 과거와 미래가 행복하게 어울리는 물꼬가 트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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