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허용적 뜻이란?

        홍성철 박사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요셉은 형들 때문에 애굽으로 팔려갔다. 이처럼 동생을 무정하게 팔아버린 형들의 행위는 악했다. 이런 악행이 하나님의 뜻이었는가?

물론 아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을 막지 않으셨는가? 요셉의 형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으실 능력이 없으셨는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능력을 행사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내버려두셨는데, 첫째는 삼라만상을 창조하신 절대적인 뜻 때문이다. 만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일일이 간섭하신다면, 그분이 만들어놓으신 세상의 원리를 스스로 깨뜨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하나님이 인간을 자유의지의 인격자로 창조하셨기에 그의 인격적 결단을 허용하시기 때문이다. 요셉의 형들이 저지른 악행이 하나님의 뜻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하나님은 그들이 결정한 대로 내버려두셨을 뿐이다. 이렇게 내버려둔 것을 ‘하나님의 허용적 뜻’이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은 죄를 인정하지는 않으시지만, 그렇다고 죄를 막지도 않으신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사람들의 악행을 막지 않으시고, ‘내버려두셨다’고 세 번씩이나 강조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두셨고’(롬 1:24),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두셨고’(1:26), 그리고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1:28).

‘내버려둔다’는 말은 죄인들이 더 이상 죄를 지으며 살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할 때 하나님에게로 돌이킬 수 있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그들이 인격적인 결단을 통해 하나님에게로 돌이키는 순간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고, 받아주시고, 그리고 변화시켜주신다.

요셉의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이 흘러서 그들의 잘못을 뉘우친 후, 동생에게 용서를 빌면서 요셉의 종노릇이라도 하겠다고 자청했다.(창 50:17~18)

요셉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받아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요셉의 용서에는 차원 높은 하나님의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인간이 악한 마음으로 범행해도,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인간의 악행을 내버려두시는 이유는 결국 드러날 절대적인 뜻 때문이다.

요셉의 형들을 통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은 소극적으로는 애굽의 구원이었고, 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의 구원이었다. 어느 학자는 하나님의 절대적 뜻과 허용적 뜻을 이런 비유로 설명했다.

“이것은 마치 어항 속에 있는 물고기들이 그 안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물고기들의 자유는 어항 속에서 제한된 자유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면서 여러 가지 악행에 연루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악행을 즉각적으로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신다.

물론 하나님에게 그런 인간을 심판하실 수 있는 능력과 권위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기에 인간의 악행을 알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을 뉘우치고 돌이킬 때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그런 악인에게도 하나님은 사랑과 용서를 부어주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을 무시한 나머지 그런 악행을 뉘우치지 않는다면, 어느 날 하나님은 그에 대하여 책임을 추궁 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의 삶을 결산해야 하는 날이 있기 때문이다. 구분의 경고를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그렇게 드러난 악행들이 알알이 심판을 받는다는 엄중한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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