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와 공감의 힘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께서 우울증 진료 상담을 받던 환자에게 살해된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한민국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인께서 20년간 우울증·불안장애를 앓는 환자를 치료하고 자살 예방을 위해 헌신했기에 어진 의사 한 분을 잃은 것을 넘어 진한 멍울을 남겼습니다.

그분의 죽음이 저의 상처를 소환했는데요. 두 번의 교회 개척, 초기엔 개척교회에 꼭 어울리는 분이 등록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섬겼지만 돌봄의 시간을 분배해야 할 때 목사가 달라졌다며 교회를 떠났습니다.

‘아무리 잘해 줘도 떠날 분은 떠나고 어떤 것도 안 해 줘도 남을 사람은 남는다’라는 가르침을 늦게 받은 게 속상할 따름인데요. 떠나는 분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되레 상처를 입힌 건 아닌지 미안할 뿐입니다. 정혜신 박사는 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했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트라우마 현장에서 피해자와 함께했는데요. 저서「당신이 옳다」에서 지금 사회엔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 등 전문가에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치유법’이 시급하다고 진단합니다.

일촉즉발의 상황, 조용히 삶을 마감하려는 사람이 주변에 넘쳐납니다. 해서, 코로나 블루로 인해 교회의 존재 이유와 사명은 더 분명해졌는데요. 함께함의 위로, 공감의 치유로 교회가 감당해야 할 몫이 큽니다.

정혜신 박사는 마음 치유에 적정기술을 도입하는데요. 정신과나 상담 센터의 전문가에게 맡길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누구나 서로를 치유할 수 있답니다. 적정심리학은 마음의 고통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정도만큼의 심리치유법입니다.

적정심리학의 핵심 키워드는 ‘나’와 ‘공감’인데요.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집중이 삶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반면 자기 자신과 다른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이 대중의 스타인데요. 저자는 스타를 “너(대중)의 취향에 나를 온전히 맞추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생태계에서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로 규정합니다.

스타는 일상에서 누군가의 기대와 욕구에 맞춰 끊임없이 나를 지워가고,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서 SOS를 치는 삶을 사는데요. 3퍼센트 밖에 안 남은 배터리를 가지고 30퍼센트 힘이 필요한 일을 하다가 정서의 심장이 멈추곤 합니다.

지속해서 자신을 소거하는 것으로 자기 존재감을 증명하려는 안타까운 사람인데요. ‘나’와의 공감을 못하고 타인과의 공감만을 신경 쓰다가 의존 반응형의 삶을 살기 십상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요?”,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목회를 하다 보면 정신과 진료 혹은 치유 상담이 필요해 보이는 분이 제법 있는데요. 시간, 비용, 이해의 부족으로 도움을 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가 마지막 보루입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CPR(심폐소생술)이나 상비약처럼 일상에서 늘 경험하는 마음의 작은 아픔, 우울증, 죄책감, 냉소에 대해 스스로 혹은 타인에게 적용 가능한 적정심리학이 필요합니다.

정혜신 박사는 적정심리학을 집밥으로 비유하는데요. 배가 고프면 집에서 스스로 끼니를 챙겨 허기를 해결하듯 마음이 아플 때 일일이 전문가의 도움을 찾지 않고도 자가 치유를 할 수 있답니다. 공감은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해선 안 됩니다.

공감은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감정적 교류인데요. 공감은 나와 상대 모두 자유로워지고 홀가분해지는 황금분할 지점을 찾는 과정입니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가 ‘너’인지 경계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정서적 호들갑이 아닌 영적인 공감이 필요합니다.

서울서지방 목회자 지역 코칭에서 정혜신 박사의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했습니다. 개척해서 힘겹게 목회하는 후배가 돌아가는 차에서 오열했답니다.

교회를 떠나는 ‘당신은 틀리고 목사인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는데요. 이젠 나도 옳지만 ‘뿐 아니라’ 당신이 옳다는 공감으로 적정목회를 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우울은 싱크홀처럼 존재합니다. 우울해서 우울한 것은 잘못된 게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자신과 서로의 죄 때문에 우울한 것은 보편적 배경입니다. 주님도 우울한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십니다. 고독, 외로움, 우울감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거예요. 인생의 바탕색인 셈이죠. 아픈 마음, 고장 난 마음은 성령께서 임재하실 자리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실망하신다. 그러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인데요. 공감에 역행합니다. 어떤 도움도 되지 않고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는 꼴입니다.

“당신이 옳다. 당신의 분노, 우울감은 지극히 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당신을 이해하고 사랑하신다.”

타인이 보는 내가 아닌 주님이 보는 나로 관점의 구원을 전환하는 공감과 위로가 필요합니다. 리더의 공감 능력은 사람과 공동체를 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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