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3:20, 6:31)

종종 바쁘다 보면 식사할 겨를이 없을 때가 있다. 예수님도 얼마나 바쁘셨던지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다. 과연 오늘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지내는가? 

지금은 ‘바쁜 시대’ 입니다.
옛날 못 살던 시절에는 서로 만나면 인사가 ‘진지 잡수셨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얼마나 바쁘세요’ 혹은 ‘요즘 바쁘시지요’라고 인사를 해야 실례가 안 될 정도로 너나 할 것 없이 바쁜 시대가 되었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바쁘다. 물론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보다 바쁘게 사는 건 좋은 것이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 보다 보기 싫은 것도 없다. 당연히 바쁘게 살아야 한다. 바쁘게 부지런히 사는 건 기독교 정신이요 또한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무엇 때문에 바쁘냐?’ 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바쁘십니까?
바쁜 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무엇 때문에 바쁘냐 하는 것이다. 정말 바빠야 할 일에 바쁜 것이라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혹 정말 바빠야 할 일을 제쳐두고 엉뚱한 것에 바쁘다면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사업하는 자가 사업 아닌 다른 것에 바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목사가 목회 아닌 다른 것에 바쁘고 신앙인이 신앙생활 아닌 다른 것에 바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웃자고 하는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목사가 토요일 밤이 늦도록 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다음 날 주일 설교를 하는데 정신이 몽롱한 채 성도를 바라보니 까만 머리는 바둑의 검은 돌로 보이고 노인들의 흰 머리는 바둑의 흰 돌로 보이더란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간신히 설교를 마쳤는데 문제는 축도였다.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세상 끝날까지 항상 같이 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다리’”라고 했다지 않는가.

그렇다.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전하시고 가르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기도하는 일에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는데 오늘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가? 영양가 없는 것에 바쁘게 시간을 낭비하며 뛰어다니지는 않는가?

바쁜 일보다 ‘중요한 일’이 우선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즉 먼저 해야 할 일이 있고 나중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우선순위를 바로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은 바쁜 일이 우선인줄 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바쁜 일이 우선이 아니라 중요한 일이 우선이다.

바쁜 일이 우선인줄 알고 사는 사람은 날마다 시간에 쫓기며 동동거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쁜 일이 우선인줄 알고 바쁘게만 살다보니까 정작 중요한 일을 놓쳐 버리고 낭패를 당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우선순위를 바로 하는 지혜가 있기를 바란다. 믿음의 사람인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시고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행하셨던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라. 두 말 할 것 없이 영혼구원 하는 일, 곧 전도하는 일이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1:38) 그렇다. 영혼구원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에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식사할 겨를도 없이 지내셨던 것이다. 본질이 중요하다. 본질에 우선하고 바빠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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