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바티스트 클라망스. 장래가 촉망되는 변호사 그는 신사였으며 휴머니스트였다. 가난한 과부를 위해서는 무료변호를 자청했고 거지들에게는 언제나 웃는 얼굴로 지갑을 열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머리를 숙이면 상대가 소경일지라도 정중하게 모자를 벗어 답례하였다. 그의 주변에선 모두 파리가 자랑할 수 있는 신사라고 그를 칭찬하기에 바쁠 정도였다.

▨… 어느 날 새벽 클라망스는 세느강을 건너다 검은 옷의 젊은 여인이 난간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뛰어내리려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지나쳤다. 너무 춥고 또 어두웠기에 자신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일상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어느 날 새벽 세느강의 다른 다리 위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어디에선가 여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알베르 까뮈, ‘전락’)

▨… 클라망스의 전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인의 웃음소리가 씻어낼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그의 가면을 냉혹하게 벗겨버린 것이다. 이점에서 까뮈의 '전락‘은 존재의 부조리를 가차없이 까발려준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까뮈에 의하면 클라망스의 전락은 인간 존재의 부조리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부조리는 존재의 본질이다.

▨… 주의 종들의 전락은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그 구현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기로 주님께 고백했으면서도 육신은 부조리에 갇혀 있으니 머리둘 곳도 없는 인자의 삶은 주님의 재림 이후에나 가능할 일인지도 모른다.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는 제껴두고 부귀 명예의 십자가만을 추구하고 있음을 당당하게 부정할 주의 종이 있었으면.

▨…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두 조각났다. 이웃교단 감독회장 문제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이전투구다. 총회본부 비리사태는 근 일년 만에 비리를 고발한 현직 총무를 재판위원회에 회부하는 이상한(?) 사태를 빚고 있다. 거룩함에는 이르지 못해도 주님의 종이라는 이름은 체면치레 정도일망정 지켜져야 할 터인데… 어디선가 클라망스의 여인의 웃음처럼 주의 종들의 체면치레도 벗기려는 웃음소리가 들릴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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