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가 에이즈 박사되기까지 모두 하나님 은혜”
매달 15달러 후원 받으며 유학
에이즈 진단시약 최초 개발
한국월드비전 회장 취임
세계 빈곤 퇴치 및 구호 앞장
“하나님은 가난한 꼴찌였던 저를 박사로, 그리고 교수로 만드신 후 스탠퍼드대학과 하버드 케네디스쿨로 보내 공부를 시키셨습니다. 이후 아시아 지역의 에이즈 퇴치 운동을 주도하며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전 세계를 돕는 월드비전 회장 자리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입니다.”
자랑스러운 성결인상을 수상한 조명환 장로(금호교회)는 2021년부터 월드비전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는 에이즈 연구 및 퇴치운동 권위자로 국내외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조 장로는 지난 1월 월드비전 회장 취임식에서 “후원을 받던 아이에서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한국월드비전의 회장으로 인사를 드리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며 “시대에 발맞춰 비대면 기부 캠페인, 다양한 기업 협업 등을 통해 일상 속 기부 문화가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가 태어났던 시절,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중 하나였다. 가난하고 열등생이던 그에게 ‘에드나 넬슨’이라는 교사 출신 미국 여성이 후원자가 됐고, 그녀는 무려 45년이나 후원을 멈추지 않았다.
후원금은 매달 15달러였지만, 그가 꿈을 꾸고 미래를 여는 데는 충분했다. 조 장로의 아버지는 고교 1학년생일 때 혈혈단신 이북에서 피난을 내려와 친척 하나 없이 매우 어렵게 살았다.
그래서 그가 태어나자, 후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명환 장로는 자신을 45년간 후원했던 ‘어머니’ 에드나 넬슨에 대해 “만 18세가 되면서 구호기관을 통한 후원이 종결됐지만, 에드나 어머니는 인연을 이어가 주셨다.
성인이 되고 대학교수로 자리잡은 뒤에도 매달 어김없이 후원금 15달러와 편지가 도착했다”며 “2001년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대륙을 넘은 사랑은 45년 동안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가 99세 되시던 해 네브라스카 세인트폴의 작은 마을을 방문해 처음 만났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월드비전 회장이 되고 나서, 하나님이 에드나 어머니를 통해 ‘너도 이렇게 살아라’ 하는 교훈을 주신 것을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조 장로는 어려서부터 금호교회 개척부터 함께한 부친을 따라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공부도 열심히 했던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성적은 늘 밑바닥이었다고 한다. 머리가 나빠서 이해력이 떨어졌고, 고등학교 3학년까지 그런 상황이 이어졌다.
갈 수 있는 대학이 없어 꿈도 마땅히 없었지만, 아버지 친구였던 건국대 김명진 교수의 조언에 따라 미생물공학과에 입학했다. 당시는 비인기학과였지만, 10년 뒤에는 생명공학 시대가 온다며 지원을 권장한 것이다.
과학이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주님의 도우심으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 유전공학 박사과정에 합격해 유학까지 떠났다.
영어가 부족해 제적을 당했지만, 에이즈를 연구하던 애리조나대학교 찰스 스털링 교수의 지도 하에 공부를 재개할 수 있었다. 이후 스탠퍼드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 바로크 블럼버그 박사와 에이즈연구소 소장 토마스 메리건 교수의 지도로 에이즈 치료약 개발 연구를 시작했다.
치료약을 피해가는 에이즈 바이러스를 다시 공격할 수 있는 약을 만들어 임상실험을 진행했다. 그곳에서 ‘과학의 상업화’를 통해 세계적인 기업의 탄생 과정을 목격하고, 경영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귀국 후 만난 서정진 회장을 도와 셀트리온 창업 과정에 참여했다.
셀트리온은 세계 1위 바이오시밀러 회사이자 국내 3위 그룹으로 성장하게 됐다. 2005년에는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 학회장에 선출돼 4년간 재임했다.
학회장으로 태국 방콕에서 에이즈 감염자를 상담을 했었는데 당시 50만원으로 에이즈 환자 치료를 도와 완치시켰던 경험은 그를 본격적인 에이즈 퇴치 운동에 나서게했다. 조명환 장로는 “에이즈는 이제 치료만 잘 받으면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병이 됐다.
그러나 1년 치료 비용이 2만~4만 달러에 달해 아프리카 환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며 “지금은 가난한 환자들을 후원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후원금이 줄어들어 안타까웠다”도 고백하기도 했다.
그가 학회장으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마흔아홉의 나이에 다시 떠난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 유학 덕분이었다.
조 장로는 “케네디스쿨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두루 공부하다 보니, 학회 회장도 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정치인과 기업인들, UN 사람들과 일할 때,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공부한 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재임 중 아시아 각국 대통령과 장관을 비롯한 지도자들을 만나 에이즈 정책 강화 및 관련 예산을 증액하고 빌게이츠 재단, 빌클린턴 재단으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런 공로로 2009년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미국인명연구소 ABI(Ameri can Biographical Institute) 주관 ‘아시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2011년에는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제10차 아시아·태평양 에이즈 대회 조직위원장으로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이끌었다.
조 장로는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에이즈 감염 예방과 국민보건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2012년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교수직 은퇴 후 남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은퇴를 1년 앞두고 월드비전을 맡게 됐다.
조 장로는 회장직을 직접 지원한 것이 아니었다. 인재 전문 추천기관의 정식 추천으로 인사위원회의 투명하고 엄격한 심사 끝에 회장에 선임됐다.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후원금을 모집하다, 전 세계 각종 질병과 환경으로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로 사역이 확장된 것이다.
조명환 장로는 특히 청소년들을 향해 “밝은 미래를 보지 못하고 슬픔으로 지낸다면, 처한 환경을 보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주님께 소망을 둬야 한다.(시 62:5)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반석(사 26:4)”이라고 강조했다.
조 장로는 “하나님이 집을 지으시지 않으면 모든 수고가 헛되다(시 127:1). 여러분이 머리도 나쁘고, 가난하고, 약하다고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용하신다(고전 1:27)”며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준비해주신 멋진 장래가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잠언 23:18). 하나님은 여러분을 절대 버리지 않으실 것(호 11:8)”이라고 격려했다.
조명환 장로는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이 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밝은 미래로 이끄시는 일은 하나님의 몫이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며 “장래 일을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님은 TV 드라마도 혼자 이해하지 못하던 나를 세계 최고 대학으로 보내 노벨상 수상자들 밑에서 공부하게 하셨고, 영어도 잘하게 하셔서 세상을 뛰어다니고 또 세상을 품게 하셨다”며 “이 많은 축복을 주신 주님만 전심으로 바라보며 이후에도 사역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학력
美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행정학 석사, 2005)
美애리조나대학교 대학원(미생물 면역학 박사, 1989)
건국대학교 미생물공학과(학사 1979, 석사 1982)
경력
건국대학교 생명과학특성학과 교수(1990~2020)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 학회 회장(2005~2009, 2015~2020)
美메사추세츠 공과대학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2019)
美메릴랜드대학교 겸임교수(생물학,미국정부학) (1991~2016)
국제의약품구매기구(UNITAID) 평가위원(2011)
유엔에이즈(UNAIDS)자문위원(2005~2009)
넥솔바이오텍(셀트리온 전신)공동창업/ 공동대표(2000~2002)
美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 객원교수(1997)
대한민국 인물 대상-생명과학(2018)
美메릴랜드대학교 글로벌 교수상(2016)
대한민국 창조경영 대상,
대한민국을 이끄는 재계인물 500人 선정(2013)
한국을 이끄는 혁신 리더(2011)
아시아를 대표하는 올해의 인물(2009)
‘AIDS: Take a Long-Term View’ 공동저자(뉴욕FT Press 2011)
저서 ⌈꼴찌 박사」(두란노, 2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