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욱 칼럼리스트

과거 극복과 쇄신의 가치를 설파할 때 흔히 인용된 우화로 솔개 혹은 수리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70살까지 살 정도로 장수하는 솔개가 40살이 되면 털이 너무 많아져 날개가 무거워지며, 부리와 발톱은 너무 길게 휘어 먹이를 쥘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40살의 솔개는 더 살기 위해 바위를 쪼아 부리를 깨고, 발톱을 뽑으며, 그것이 다시 나는 고통과 인고의 시간을 견뎌 남은 30년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는 어디까지나 오래 전해온 우화에 불과하다. 아무리 수리가 장수하는 새라고 해도 그 수명은 45년가량이며, 솔개 역시 20년 넘게 사는 정도다.

부리가 부러진 새는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 같은 허무맹랑한 전설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전해진 이유는 그것이 전하는 가치와 감동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절대 정복할 수 없는 ‘세월’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인내와 노력으로 극복한다는 일종의 낭만이 깃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5일, 대중음악 가수 아이유는 정규앨범 5집을 발표했다. 그를 아직 앳된 이미지의 젊은 가수로 인식하는 이도 적지 않지만, 아이유는 어느덧 데뷔 13주년을 맞이한 나름 베테랑 가수다.

내년에 곧 서른이 되는 그의 이번 앨범에는 우리 나이 스물아홉에 자신의 20대를 향해 고하는 작별 인사가 가사와 뮤직비디오 속 다양한 상징에 빼곡하게 담겨 있다.

앨범 제목부터 꽃말이 ‘젊은 날의 추억’이라는 뜻을 지닌 ‘LILAC’(라일락)이다. 특히 그는 첫 곡이자 타이틀 곡 ‘라일락’에서 20대 시절의 ‘청춘’을 ‘10년간 사랑한 연인’으로, 이러한 ‘청춘과 헤어짐’을 ‘찬란한 봄에 맞는 기쁜 이별’로 비유한 뒤 마지막 곡 ‘에필로그’에서 “⋯내 맘에 아무 의문이 없어 난 이다음으로 가요. (중략)이 밤에 아무 미련이 없어 난 깊은 잠이 들어요⋯”라며 오늘의 장을 넘겨 내일로 향하고 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아이유의 새 앨범을 들으며 문득 시편 103편 5절과 수리에 관한 일화가 떠올랐다.

오늘날 아무리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노년의 삶의 질이 높아져 이팔청춘 넘어 ‘오팔청춘’이라는 단어가 흔히 쓰인다고 해도 우리가 인지하는 인생의 청춘은 여전히 20대, 30대에 머물러 있다.

앞서 언급했듯 과학과 기술이 거스를 수 없는 신체의 강인함, 남은 생에서 기대하는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 시기보다 ‘청춘’이라는 말에 더 잘 어울리는 때는 없어 보인다.

근거 없는 우화에 불과한 수리 이야기가 하필 40세를 기준으로 삼은 것도 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기독교인의 신앙에는 정해진 청춘의 시기가 없다.

각자 신앙의 시작점도 다를뿐더러 찬란하게 빛나는 봄의 계절도,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의 계절도, 신앙의 열매를 수확하는 가을의 계절도 저마다 다른 때에 다른 방식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요즘만큼은 많은 신앙인이 대부분 비슷한 시절을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행정당국의 조치 및 자체적인 노력으로 전과 같은 예배와 모임이 1년 넘게 제한받고 있고, 그로 인해 실제 발길은 물론 마음마저 뜸해진 신앙인들을 종종 발견한다.

시대와 환경이 초래한 변화를 두고 세월의 흐름 따라 청춘을 향해 고하는 안녕처럼, 실은 부러지면 다시 나지 않는 새들의 부리와 발톱처럼 과거를 무작정 고집과 낭만으로 붙잡을 수는 없는 걸까 심각한 고민에 잠기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돌이키는 중요한 사실은 청춘의 페이지가 한 장 넘어가든 넘어가지 않든 부리와 발톱이 자라든 자라지 않든 봄 지나 여름 오고 겨울 지나 다시 봄이 오듯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다윗이 쓴 감사와 찬양의 시인 위 시편 구절은 독수리 같은 청춘의 회복이 곧 좋은 것을 통한 만족으로부터 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의 만족은 결국 세상의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이를 되새길 때 마치 노래 가사 한 줄처럼 “내 맘에 아무 의문 없이” 기쁘게 이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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