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밖에 모르는 늦깎이 ‘일꾼’
1년 만에 중 · 고 검정고시 거쳐 대학도 합격
막대한 재산과 보물 교회당 건축 위해 내놓아
“세상 끊으니 하나님의 빛이 내 속으로 들어와”

66세에 대학 새내기가 된 이병섭 장로(백송교회‧사진)는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다. 반백 년 만에 다시 교정을 밟게 된 것이 꿈만 같다.

이 장로는 올해 구미대학교 스마트경영학과에 늦깎이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그는 지난해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잇달아 통과하고 대학까지 합격했다.

평생 이루지 못했던 일을 회갑넘어 병마와 싸우며 단 1년 만에 이루었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늦게 시작한 공부가 이렇게 결실이 빨라진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그도 인정했다. 

그가 늦은 나이에 중고등학교 과정의 검정고시를 보며 학업에 도전하게 된 것은 이순희 담임목사가 그를 장로로 세우겠다고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 그런 소리를 들었을 때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무식한 사람이 어떻게 장로가 될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만 나왔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공부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고 한다.

이 목사도 피택장로가 검정고시를 합격한 이후 임직식을 거행하겠다며 열심히 준비해보가 그를 응원했다. 

그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오랜 만에 공부라서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학업을 접은 지 수십년 만에 다시 잡은 교과서, 이미 굳을 대로 굳어진 머리(그는 ‘깡통 머리’라고 표현했다)로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열정은 앞섰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탓에 하면 할수록 오히려 공부에 더 전념할 수 없었다.

그때 그는 성령님께 간청했다.  “하나님, 저 빈 깡통인 것 아시잖아요. 말씀보고 기도할 테니 지혜를 채워주세요.”

그는 그렇게 말씀을 보면서 밤낮으로 기도하며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자 어느샌가 시들해진 그의 뇌세포가  깨어나고, 지혜가 충만해지는 듯했다.

인내와 끈기를 갖고 중등 졸업 검정고시에 응시한 그는 작년 6월  합격증을 받았다. 3개월 만에 이룬 쾌거였다. 그는 기뻐할 겨를도 없이 바로 있을 고졸 검정 준비에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머리에 짓무림이 생기더니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  공부는 켜녕 일상생활도 힘들었다. 어느새 남은 시간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꼭 이루고 싶은 꿈, 하나님의 일꾼이 되고자하는 열망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그는 하나니께 엎드려 빌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또 구했다.  시험 당일에 긴장이 되었지만 고시장에서 기도 후 시험지를 받았을 때 그는 두 눈을 의심했다. 전날 공부한 곳에서만 문제가 출제되었다.

잘 모른 문제도 기억이 낫고 다른 문제도 자신도 모르게 답을 써내려 갔다고 한다.   검정고시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알파벳 정도만 알았던 영어과목이 가장 어려웠는데  80점 이상 맞았다.  이렇게 그는 10월에 고교과정 합격증까지 손에 거머쥐었다.

60대의 경우 고교 과정은 5, 6번씩 시험을 치는 게 보통인데 한 번에 통과한 것은 드문 사례라고 한다. 그런데 그는 책을 다시 잡은 지 불과 8개월 만에 중고등과정을 한번에 통과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고 내침김에 대학입시 수시에 응시했고,  구미대학에 당당히 합격했다.  

 배우지 못한 한을 풀어주신 하나님은 그를 일꾼으로 부르셨다. 이순희 목사는 약속한 대로 그해 11월 7일 그를 장로로 세웠다. 감격적이었다. 백송교회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이 그대로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이렇듯 짧은 시간에 그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들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남의 인도하심이라고 그는 고백했다.

이 장로는 “하나님께서 저 같은 사람을 쓰시려고 이순희 목사님을 만나게 하시고, 평생에 한이 되었던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장도 주시고 꿈에도 꾸지 않았던 대학교 입학까지 선물해주셨다”며 “오직 영혼을 살리고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일에 앞장서겠다”라고 고백했다.

사실 그의 삶은 백송교회에 오기 전과 후가 극명하게 갈린다. 이전에는 세상의 정욕을 포기하지 못해 고난의 연속이었다면 그 이후는 행복과 기쁨의 연속이다.

영천에서 태어난 그는 너무 가난해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농사와 공사장 막노동꾼, 회사원 등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했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도 가난은 끝날 줄 몰랐다. 어린 자녀들을 처가에 맡겨가며 부부는 돈벌이에 매진했다.

어느 해, 부산에서 작은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때 새벽기도까지 하면서 ‘성공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얼마 안 되는 전세금을 빼서 교육관을 짓는 데 바치기도 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당시 IMF 경제위기었는데 중고기계를 사고파는 사업이 잘됐다. 이후 하나님의 축복으로 2만5,000평의 공장을 매입했고 임대사업을 하며 막대한 재산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과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정욕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성공신화를 쓴 그는 남부러운 것 없이 살았지만 하나님과는 멀어졌다. 

그럴수록 교만과 혈기 분노가 그의 마음을 차지했다. 언젠가부터는 두렵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급기야 공황장애로 날마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살았다.

그의 딸도 우울증과 정서적 불안을 겪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왔고, 집안도 편안할 날이 없었다. 고통이 계속되었지만 해결될 기미가 없었다.

고난의 밤을 지내고 있을 때 한 경찰관이 그에게 백송교회 이순희 목사를 소개했다. 자신도 알 수 없는 우울증을 앓았는데, 이 목사를 통해 고침을 받았다면서 그의 손을 이끌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는 이순희 목사를 찾았다. 처음에는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치유될 것이라는 확신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그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신앙적 체험했다. 이 장로는 “예배시간에 크고 선명한 빛을 보았는데, 그 빛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 후 공황장애가 기적처럼 치료가 되었다"면서 “그때 고혈압과 심장질환, 간경화 등 모든 질병도 고침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말했다.

딸의 우울증도 사라졌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는 세상과 모든 것을 끊었다. 공장에 예배실을 만들어 매일 예배로 하루를 시작했다.

지금도 공장에서 몇 시간 씩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 구미에서 대구와 보령, 인천까지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집회에도 참석하며 훈련을 하고 있다.

그렇게 애착을 가졌던 돈도 하나님께 아낌 없이 드렸다.

이 장로는 “우리 영적 지도자이신 이순희 목사님을 만난 후로는 내 인생이 이렇게 달라졌다"면서 "변하고 (나니) 정말 하나님 아니면 살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이 목사님과 함께 전 세계에 700개 교회를 세우고,  기도온 용사같은 제자를 세우는 일에 쓰임 받기를 원한다. 
 
마침 올해 그는 백송교회 새성전 건축위원장을 맡아 그 꿈을 이루어갈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집안의 가보인 요나라 때의  ‘황금 그림판’과 금덩이를 하나님께 바쳤다.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드리기 위해서다.
 
이뿐만 아니다. 교회당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 소유한 수십억 원 상당의 공장도 매물로 내놓았다. 공장이 팔리면 몽땅 건축헌금으로 바치기기 위해서다.
 

그의 소원은 남은 인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 장로는 “영혼구원을 위해 교회를 세우고, 제자양성을 위해 학교를 세우는데 저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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