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무기는 거룩이어야 합니다

       이성훈 목사

최근 일어난 LH 사건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깨끗하지 못하고 부정직한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깨끗함의 댓가는 값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논리가 만연한 세상에서 ‘서울이 나오지 않아도 좋으니 정도(正道)로 걷겠다’는 우직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출애굽 이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 두 가지 있는데, ‘율법’과 ‘성막’입니다.

‘율법’은 애굽에서 우상숭배에 익숙해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삶의 지침입니다.

‘성막’은 히브리어로 ‘미쉬칸’(출 25:9; 26:1) 혹은 ‘오헬 모에드’라고 합니다. ‘미쉬칸’은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장소’라는 의미이고, ‘오헬 메오드’는 ‘만남의 장막’이라는 말입니다.

즉 ‘성막’은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장소이자 인간을 만나주시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성막 만드는 법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출애굽기 25장에서 40장에 걸쳐서 주셨는데,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미처 전열도 가다듬지 못한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출 25장에서 성막을 만들라고 하시기 전 하나님이 19장부터 24장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소위 ‘시내산 언약’과 관련이 있습니다. ‘시내산 언약’의 내용은 첫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 둘째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겠다는 것 셋째,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소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쎄굴라’를 번역한 말로서 ‘보물’이 되게 하겠다는 의미입니다.(출 19:5~6) 그 만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소중히 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은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이스라엘에게 든든한 미래에 대한 보장이 또 있을까요? 며칠 전 신문에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 플랫폼’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에 관한 논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미래의 먹거리보다 더 든든한 미래에 대한 보장을 약속하셨습니다. 미래의 먹거리로 과학기술이 있어야 하듯이 언약의 성취를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거룩이 요구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성막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성막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이 ‘거룩’하시다는 것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는 출애굽 이후 아직 전열을 가다듬지도 못한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우리는 종종 능력을 구합니다. 그러나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거룩’에 대한 열망입니다.

마치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좇는 허다한 무리에게 발각되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 앞에 나아와 “주여 깨끗하여지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부르짖었던 것처럼 우리도 생명 다해 ‘거룩’을 부르짖어야 합니다.

소화를 잘 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소화되지 않는 음식을 멀리해야 합니다. 이 원리는 영적인 ‘거룩’에 관한 문제에도 적용됩니다.  

영적으로 건강하려면 영적으로 해가 되는 것을 단호하게 끊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따돌리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앞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는 본래부터 냉대와 핍박과 순교의 역사였습니다. 우리가 그 역사를 잘 알면서도 사람들의 따돌림이 두려워 ‘거룩’을 포기하는 것은 비겁한 일입니다.  

‘거룩’의 문제는 사활을 걸고 달려들어야 합니다. 이는 죽음의 골짜기와 같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일 먼저 ‘거룩’을 요구하신 이유입니다.

‘거룩’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무기요, 최고의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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