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무트 발햐(Helmut Walcha, 1907~1991) 독일의 쳄발로 연주자이자 오르가니스트인 그는 세계 최초로 바흐(J. S. Bach)의 오르간곡 전부(165곡)를 녹음했습니다.

사실 그는 앞이 안 보이는 맹인입니다. 이 위대한 작업은 그가 완전히 눈이 먼 다음에 시작해서 약 15년이 걸렸습니다.

그는 1세 때 맞은 천연두 주사의 부작용으로 16세 때 양 시력을 모두 잃고 말았지만 음악을 좋아했던 부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누나에게 악보 읽는 법을 배웠고 우연히 듣게 된 바흐의 ⌈F장조 인벤션⌋ 연주에 감명을 받아 오르간에 입문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완전 실명 1년 전인 1922년,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입학한 발햐는 당시 바흐 연주의 최고 권위자인 귄터 라민(Günther Ramin)을 만나게 되면서 더욱 정교한 바흐 연주자로 다듬어지게 됩니다.

발햐의 주된 음악 레파토리인 바로크 음악, 특히 북스테후데, 파헬벨, J.S.바흐, 헨델 등으로 모아질 수 있었던 것 또한 스승인 라민의 영향이었습니다.

발햐는 비록 시력을 잃어 악보를 볼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악보로 연주되는 음을 듣고 모두 외워버렸습니다. 어머니와 아내가 쳐주는 피아노 음을 한 성부씩 듣고 자신의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전체를 한 번에 연주하는 방식으로 바흐 오르간 전곡을 다 암기하여 연주하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15년, 그의 나이 40세가 되던 1947년이었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명’이라는 고통은 보이는 세상과의 단절일 수밖에 없었지만 발햐는 오히려 ‘그 고통’을 통하여 마음의 눈을 떠 아름다운 세상을 바흐의 교회음악에 담아 우리로 보게 해준 것입니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으로부터 영원히 나를 단절시켜 놓은 그 질병은, 내가 내적인 지각으로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사순절기의 끝자락, 고난주간이 왔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홀로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그분만이 모든 죄와 ‘악을 극복하는 아버지께 대한 사랑’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받아들이셨으며, 이 때문에 그분의 고통에서 우리의 죄들이 불식되고 그분의 부활로 인류의 영원한 사망이 정복되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복음이며, 우리를 통해 세상에 보여져야 할 구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이 생명으로 탈바꿈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며 우리를 통해 세상에 보여져야 할 신앙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적 고난에 참여함으로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는 길일 것입니다. (요 3:16, 갈 5:14, 약 2:8)

고난을 통해 세상을 보기, 교회는 고난 가운데 그리스도로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구원을 봅니다.

이는 불가능한 가운데 가능, 불완전한 가운데 완전, 불신앙 가운데 온전한 신앙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남은 고난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의 온전한 소명을 듣고, 교회로서의 올바른 사명을 세상 한복판에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자신을 내어줌의 신앙의 신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고난주간,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목사님의 말씀을 발햐가 연주하는 바흐의 ‘오라, 이방인의 구세주여. BWV 599’, ‘예수, 나의 기쁨. BWV 610’과 함께 음미해 봅니다.

“하나님은 세상으로부터 십자가로 쫓겨 가신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무력하시고 연약하시다. 바로 이렇게 그리고 오직 그렇게 그분은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를 도우신다.” 「저항과 복종」, 24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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