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28~30
언젠가부터 ‘끝맺음’을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종의 미’ 말입니다.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 했는데 만날 때 반갑고 즐거운만큼 헤어짐도 아름다워야 진짜 멋진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담임목사로 사역하며 부교역자나 교회의 직원을 새롭게 영입하게 되면 항상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쁘게 만나 웃으면서 일을 시작하는 것처럼 헤어질 때도 기쁘게 웃으며 헤어집시다.”
사실 이 말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목회의 끝맺음을 잘 하고 싶습니다.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신학을 공부하고, 오직 목회의 길만 걸어왔기에 그 길 끝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고 아름답게 맺어지기 원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기 때문이지요. 인생의 끝맺음을 잘합시다 목회 뿐 아니라 인생의 끝맺음도 잘하고 싶습니다.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임종을 지켜보고 장례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 한분씩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볼 때면 나의 남은 인생도 아름답게 끝맺음 되길 기도합니다.
인상적인 임종이 있습니다. 후배 목사 모친 권사님의 임종이었습니다. 아내와도 친분이 있기에 함께 갔습니다. 권사님은 우리 부부를 보며 힘없는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리곤 당신의 임종예배를 드려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예배인도를 목적으로 간 것이 아니기에 순간 놀라 아들을 쳐다보니 어머님의 요청이 있어 나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권사님이 좋아하는 찬송을 몇 곡 불렀고, 천국 소망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작별 인사를 하는데 우리 부부와 당신의 아들, 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힘은 없으나 나직한 목소리로 병실에 있는 모두에게 축복의 말씀도 해 주었습니다.
이틀 후, 그 후배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님이 소천하셨다고. 그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는 나에게 큰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임종예배를 드린 다음 날 아침, 회진하는 의사에게 권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의사 선생님! 나 어제 임종예배까지 다 드리고 작별인사도 했는데, 아직 안 떠나서 자식들 보기가 민망하네요. 의사 선생님! 고마웠습니다.
꼭 예수님 믿고 우리 천국에서 만나요.” 정말 멋진 인생의 끝맺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의 일이 얼마나 큰 은혜로 남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미국 타임지 창간자의 부인, 클레어 부츠 루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단 한 줄의 문장으로 기억된다.” 참 공감되는 말입니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은 ‘미국 독립의 어버지’로, 아브라함 링컨은 ‘노예 해방의 아버지’로, 마틴 루서 킹은 ‘흑인 인권운동의 선구자’로 기억되는 것이 바로 그 예가 되겠지요. 물론 부정적인 한 문장으로 기억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강력한 미국 건설을 위해 힘쓴 공로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도중에 하차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자신의 성공적인 성과는 묻힌 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임기 도중 사임한 미국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억될까 괴로워 했다 합니다.
아무리 멋진 한 문장으로 인생을 끝맺음 하고 싶어도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우리 인생은 미완성 되기 십상이겠지요.
완벽한 삶을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 완벽한 삶을 사셨고 완벽한 끝맺음을 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던 로마의 장교 백부장은 십자가 밑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 15:39)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들, 가상칠언!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선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 중의 한 말씀이 “다 이루었다!”이지요.
이 말씀은 인간 역사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승리의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인간이 이러한 선언을 할 수 있을까요?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는 이 말의 중요성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말 한마디를 설명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일찍이 말해왔던 다른 모든 말들이 필요할 것이다 . . 이 말은 전혀 측량할 수 없는 말이다. 이 말은 너무나 높아서 내가 도저히 오를 수 없는 말이다.
이 말은 너무나 깊어서 내가 도저히 그 깊이를 잴 수 없는 말이다.” 다 이루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다 이루었다”로 번역된 헬라어 ‘tetelestai’는 상업용어로 쓰일 때는 ‘다 지불했다’는 뜻이고, 미술용어로 쓰일 때는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말씀 ‘tetelestai, 다 이루었다’는 먼저는 구약에 예언된 말씀들이 예수님 안에서 다 성취되었음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롬 1:2)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은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완성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요. 또 하나는 세상을 구원 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이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9-20)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에게 알리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한 청년이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지금도 많은 이들이 동일한 질문을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우리는 이렇게 답해야 합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요 선물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구원 사역을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다 이루었다!”
다 이루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종려주일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