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훈 목사

지구촌은 지금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 한 중세시대 소설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가 창궐한 지 일 년이 지났지만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끝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그 긴 터널의 한복판에서 공포에 떨고 있다.

물론 백신이 개발되어 각국으로 공급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것 같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 하는 상황이 우리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 팬데믹은 모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앞으로도 오래 동안 과거와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인류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큰 재앙이 되었다. 그러면 이 기막힌 재난을 과연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는 과학이 해결할 것인가?

만약에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온 인류를 일 년 이상 공포로 몰아 갈 수 있었을까? 지금으로서는 백신을 맞아 집단면역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코로나19의 초기 확산이 이단 신천지의 비협조인 태도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 소수의 정체성을 잃은 기독교 선교단체들이 우매한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 매우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순수하게 신앙생활을 위한 교회 설립은 자유스럽다고 하지만 특히 교육을 위한 단체는 당국의 인가를 반드시 받아야 함이 상식이 아닌가? 기독교 단체가 왜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한다면서 사리에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일까?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아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이런 무책임한 일 때문에 뉴스를 통해 교회에서 확진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식은땀이 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런 어려운 때 교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나? 지금 대부분의 교회들은 정부 방역 대처에 성실히 협조를 잘 하는데 왜 비난의 화살이 교회를 향하고 있을까?

더 놀라운 것은 이 일로 인해 불신자들의 76%가 교회를 신뢰할 수 없는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개탄할 일이다.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우리는 이 고통의 기간을 통해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은 잘 변화하지 않는 인간의 고질화 된 습성을 깨뜨리기 위해서 고통을 사용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두 가지 방법으로 정리해 가신다. 첫째, 고통을 빨리 제거해 주길 바라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다.

둘째, 고통 속에서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켜 올바른 자리를 찾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고통 받는 세상에서 울부짖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올바른 자리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생생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때 교회 지도자들과 모든 신자들은 먼저 하나님 앞에 불의함을 가진 행위가 없었는지 기도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사회를 향해 이러한 행위가 신앙적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지 깊이 반성하고 회개해야 한다.

기독교는 내일의 선교를 위해, 고귀한 복음의 가치를 위해, 오늘의 고통을 참고 이겨야 할 것이다. 또한 어떤 고통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올바른 자리를 온전히 지키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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