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페 사랑이란?

             홍성철 박사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어주는 요인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남녀의 사랑, 부모의 사랑, 친구사이의 사랑, 이타적 사랑 등 종류가 많지만 이야기식의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는 뭉뚱그려서 ‘사랑’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분석적인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경우마다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

남녀의 사랑을 ‘에로스’라고 하며, 부모의 사랑을 ‘스토르게’라고 한다. 또한 친구의 사랑을 ‘필레오’라 하는데, 이 단어에서 파생된 ‘필로스’는 친구의 뜻이다. 그리고 이타적인 사랑을 ‘아가페’라 한다.

신약성경에서 많이 나오는 ‘사랑하다’는 필레오(25번)와 아가페의 동사형인 아가파오(143번)이나, 다른 두 가지 사랑은 삶의 현장에 스미어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에로스와 스토르게와 필레오는 조건이 전제되는 사랑이다. 남녀 간의 사랑은 상대방에게 끌린 나머지 소유하고픈 다분히 육체적인 욕망을 전제로 한다.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은 가족이라는 전제 때문에 갖게 된다. 친구간의 사랑은 자격과 우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타적인 사랑은 전제조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어야 하는 조건이다.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은 자격은커녕 역겹고, 더럽고, 냄새를 풍긴다. 그럼에도 그들을 돌보아주고, 품고, 위로해주는 사랑이 아가페 사랑이다. 도대체 그런 사랑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구속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자격은커녕 죄로 찌들었을 뿐 아니라, 그분을 향해 주먹질하면서 대들었던 죄인들을 심판하시지 않고 도리어 사랑으로 받아주셨다. 그런 조건 없는 사랑을 위해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희생시키셨다. 그것이 바로 아가페 사랑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아가페 사랑을 이렇게 묘사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화목제물은 불에 타서 바쳐진 제물이란 듯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십자가에서 제물로 바쳐진 화목제물이었다. 그런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죽어가는 말기암 환자를 위해 그의 생애를 불태울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마땅하도다’는 단어에는 ‘빚을 지고 있기에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빚을 하나님에게 갚으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특히 자격 없는 사람에게 갚으라는 것이다.

하나님 대신 사람에게 빚을 갚으라는 명령은 사람을 하나님과 대등한 입장에 놓는 것과 같다. 예수님도 사랑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요 13:20) 결국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의 빚을 진 사람이다. 사랑이 부족한 이 어두움의 세대에 그런 사랑의 빛을 비추는 그리스도인이 많이 생긴다면 이 세대는 그만큼 밝아질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부모의 에로스 사랑 때문에 태어났고, 또 스토르게 사랑 때문에 양육을 받았으며, 필로스 사랑 때문에 다듬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가페 사랑을 경험한 결과 그 사랑을 실천하면서 완성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거룩한 사랑과 기독자의 완전을 강조하는 성결인은 조건 없이 사랑하면서 완성돼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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