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 목사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자 아내의 첫 마디가 “손 씻어요”다. 금방 전철역 화장실에서 씻고 왔다 말해봐야 소용없다. 면역력에 자신이 없어 불안한 아내 성화에 못 견뎌 다시 손을 씻는다.

“언제까지 손을 이렇게 씻어야 하나, 손바닥 달아빠지겠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손을 씻다가 문득 어렸을 때 추억을 떠올린다.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어머니는 영락없이 ‘손 씻으라’라는 말씀부터 하셨다. 하지만 듣는 둥 마는 둥 할 때가 많았다.

겨울 찬바람에 손등이 트고 튼 사이에서 피가 나면 아리도록 아팠지만, 어머니가 아실까 봐 손등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꾸중 듣기가 싫어서다.

결국은 들통이 나고, “이놈아! 흙장난하고 손 안 씻어서 그런 거여” 책망을 들으며 눈물만 찔끔찔끔 흘렸다. 그 사이 어머니는 당신 화장대에서 구리무를 꺼내 내 손등에 듬뿍 바르고 살근살근 문지르셨다.

이렇게 몇 번을 발라주시면 거친 손등이 고와지고 상처가 아물었다. 어머니의 훈계에다 아팠던 슬픔까지 겹친 참회의 눈물, 손등 위에 구리무를 발라주시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 그 손길 따라 번지는 향긋한 냄새와 구리무의 효능, 모두가 어우러져 내 손등이 나았을 것 같다.

그 시절이 그립고 자애로우셨던 어머니가 더욱 보고 싶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생한 지 1년이 넘는다. 초기만 해도 여름 더위가 오면 수그러들 줄 알았다. 여러 해 전 경험했던 사스와 메르스 정도의 유행성 독감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코로나19는 거센 바람을 탄 산불처럼 삽시간에 온 세상을 아비규환으로 만들었고 사계절을 순환하고도 기세가 꺾일 줄 모른다.

이 미증유의 사태로 수많은 사람이 일터를 잃고 자영업자가 문을 닫고 기업들이 도산하고 있다. 지금도 지구 곳곳의 방역담당자들이 수용 한도를 넘는 환자증가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사망자 시신 수습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다.

교회는 대면 예배가 중단되고 성도의 교제가 끊긴 지 오래다. 6.25전쟁으로 서너 달 동안 예배당을 쳐다만 보고 들어가 예배드릴 수 없었던 그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고 우울하다.

방역 차원에서 마스크를 쓰고 사람 만남을 자제하고 손을 씻고 일상을 축소하며 지냈다. 눈만 뜨면 코로나가 사라지게 해 달라고 애절하게 기도했다. 그래도 역병은 꿈쩍 않는다. 이 범상치 않은 현실에 가슴이 섬뜩해 온다.

참으시던 하나님의 진노가 폭발한 것으로 짐작되어서다, 하나님이 사람과의 대면을 제지하시고 손을 씻도록 강제하시고 마스크를 씌워 입을 봉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비 대면하며 은밀히 하나님을 독대하고 손을 씻으며 감추고 있는 더러운 손마저 씻고 침묵하며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보라 하시는 것 같다.

그동안, 성직에 몸담았던 나를 포함한 수많은 교회 지도자와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집을 터전 삼아 거짓과 위선과 교만의 흙덩어리 위에 욕망의 물을 부어 흙장난을 즐겼다.

그 진흙탕에 손이 얼마나 더러워지는 것도 모르고 탐욕 놀이에 취해있었던 우리들이다.

그러는 동안 교회는 소리 없이 병이 깊었고 힘을 잃었다. 신앙은 지키되 교회는 싫다며 떠나는 가나안 성도가 200만 명이나 된다니 한국교회 미래가 암담해 보인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 흙장난으로 더러워진 손을 씻으라 하신다. 감추고 있는 검은 손, 얼룩진 손, 거짓된 손, 피 묻은 손을 씻으라 하신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한국교회 상처 위에 은혜의 구리무를 바르시고 치유의 은총을 주실 것 같다.

“이놈아 흙장난하고 손 안 씻어 그런 거여” 하시던 어머니의 책망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바뀌어 내 귀에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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