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11~24절)

누가복음 15장 11~24절에는 정말 가슴 뭉클한 어느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모든 재산의 소유권과 상속권이 아버지의 권한 가운데 있는 것이거늘! 둘째아들은 이를 무시하고 아버지의 뜻과는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에게 생떼를 씁니다.

“내게 돌아올 분깃을 주소서!” 하고 강청하였습니다.(12절) 탕자가 된 ⅓인생 신명기 21장 17절에 보면 유대인의 재산 상속법은 장자에게는 ⅔ 를, 차자에게는 ⅓을 줍니다. 둘째아들은 상속법에 의해 ⅓ 분깃을 받아가지고 나갔습니다.

분깃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βίος(비오스)인데 그 뜻은 life(라이프), 즉 삶(인생)이란 뜻입니다.

탕자의 정의는 ⅓ 비오스,  ⅓ 인생입니다.  왜 ⅓인생이 되었습니까? 아버지를 떠났으니 하나님이 없는 인생이요, 형님을 떠났으니 이웃이 없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탕자는 오직 자기만의 인생 즉, ⅓ 인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교회가 십자가가 있는 것을 보아서는 하나님을 모신듯한데 진정한 이웃사랑이 없는 것을 보면  ⅓ 인생은 아닐 런지?

탕자는 아버지를 버리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죄란( ἁμαρτία 하마르티아)로서 ‘빗나간 화살’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입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그 인생을 다 허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그 자체가 허비하는 인생이요!  정처가 없는 인생입니다.

일찍이 성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 제1장 제1면에 “오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위해 만드셨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마음은 당신이 없이는 정처가 없나이다”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탕자는 참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탕자는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결심을 합니다.(17~19절)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결심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회개란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 방향전환. 돌아섬을 의미하는데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회개는 일생에 단 한번 예수 믿는 것이 회개입니다.

탕자는 절룩거리며 죄송한 마음으로 고향집 아버지를 찾아옵니다. 어느 날  탕자가 저 멀리 나타나니까,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셨습니다.

목욕도 안했는데 얼마나 더러웠을까? 그러나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이기에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너무나도 당황한 탕자는 “저를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품꾼의 하나로 여기소서!” 하였으나 아버지는 “그게 무슨 말이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니라”하시면서 기쁨의 잔치를 베푸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용서하시고 기다리시는 사랑이십니다. 그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과거의 죄에 대하여 운도 안 띄십니다. 하늘잔치로 영원히 즐거움을 누리게 하십니다.

아들로서 당연히 누릴 권리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우리의 과거를 생각하면 분에 넘치는 대우인 것을 어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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