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교회 재건하고 권사취임, 위암·대장암 기도로 치유 

교회건축이 완공되고 1967년 입당예배를 드린 후 김말준 목사는 전쟁 중에 부모를 잃은 고아를 위해 고아원과 성애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조광녀 집사는 물심양면으로 교회와 학교를 위해 헌신했다. 양구성결교회는 지역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아 교인들은 날로 증가했다. 

1956년에 양구군 해안면이 남한 최전방으로 수복되어 군민 합동으로 15평 판자로 지은 만현교회가 다 허물어져갔다. 이 소식을 듣고 조광녀 집사는 1972년 4월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해안면으로 갔다.

민통선 안에 사는 영혼들을 위해 새벽마다 담요를 쓰고 허물어진 교회당 안에서 눈물로 기도하면서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각 교회를 순회하며 모금통을 들고 나섰다. 

기도하면서 다녔지만 교회들이 너무나 어려워 그냥 돌아서야 했고, 사정을 듣고 건축비 일부를 내 주는 교회도 있어 모금한 돈과 본인의 사재를 털어 30평 교회를 재건축했다.

당시 만현교회는 장로교단 소속이었고, 교역자는 김필선 전도사였지만 1973년 6월 28일 예배를 드리면서 장로교단 시찰장 김영환 목사로부터 조광녀 집사는 권사취임을 받았다. 

휴전선 인근 마을이라 중학교가 없어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진학하지 못하고 농사일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조권사는 기도했다.

박영재 집사가 이곳 출신인 샌프란시스코 한국총영사관 주영한 씨에게 연락하여 그분의 후원으로 영한고등공민학교를 세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이 몰려왔다. 학교운영은 조 권사의 수양아들 유지택 씨에게 맡겼다. 

못 배워 평생 한탄하며 살아갈 젊은이들을 하나님은 조광녀 권사를 통해 신앙으로 성장하며 훌륭한 인물들이 되게 하는 길을 열어 주셨다. 조 권사는 나이가 들고 또 전적으로 주의 일을 하기 위해 가게는 모든 일에 성실한 큰아들 내외에게 맡겼다. 

큰아들 내외는 가게를 운영하는 바쁜 중에도 교회 일을 내 일처럼 충성을 다하여 섬기더니 1978년 5월 박영재 집사가 양구교회에서 장로장립을 받았고, 자부 이금례 집사도 함께 권사로 취임했다. 두 내외는 교회의 큰 기둥인 야긴과 보아스처럼 봉사하게 되었다.

어린 남동생 같은 초등학생 남편에게 시집와서 언제나 학교 잘 다녀오라고 배웅하고, 학교 다녀오면 책보를 받아 잘 다녀왔느냐고 받들던 자부가 평생을 한결같이 시어머니 말씀이라면 두말없이 순종하고 교회 일에도 앞장서더니 권사의 직분과 사명을 주셨다.

조광녀 권사는 행상부터 시작하여 식당이며 쌀가게도 운영하고 포목점을 차려 사업까지 안 해 본 일 없이 가시밭 길을 헤치면서 걸어온 길 66세, 이제 자녀들 다 믿음으로 성장했고 주님을 위해 동분서주 다니며 일하던 어느 날 급성 위암과 대장암이라는 뜻밖의 진단을 받았다. 

춘천 외과병원의 한기철 의사는 일초라도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하는 위급한 상황이라고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한시가 급해 가족은 어머니 몰래 수술 날짜를 받았다. 이를 수술 직전 알게 된 조광녀 권사는 “내 몸에 칼을 대지 마라 내 병은 하나님이 고쳐주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녀들을 다 모이게 한 후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어차피 수술비는 병원으로 들어가야 하니, 그 돈을 교회 건축 헌금으로 드려라”라고 당부했다.

감동을 받은 담임 김세한 목사, 양구교회 이길환 목사, 춘천중앙교회 윤철중 목사, 소양교회 이기성 목사, 영락교회 이만선 목사 등 인근 목사들이 차례로 예배드리고 안수기도하고 성도들도 돌아가며 병실을 지켰다. 

마침내 기도가 응답되고 기적이 일어났다. 의사는 “위암과 대장암이 말라 없어졌다.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난다”며 놀라워했다. 암이 수술 없이 치료되어 퇴원하고 감사예배 중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귀하게 사용하리라”는 음성이 들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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