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과 사랑의 관계는?

            홍성철 박사

거룩과 사랑은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에 속하는데, 거룩은 520번, 사랑은 659번씩 각각 나온다. 그렇게 많이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거룩이 구약에서 396번이나 나오는 걸 보면 다분히 구약적인 단어인데 반하여 사랑이 신약에서 354번이나 나오는 걸 보면 상당히 신약적인 단어이다. 그렇다고 거룩이 신약에서 중요하지 않거나, 사랑이 구약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거룩의 기본적인 뜻은 ‘다르다,’ ‘분리하다,’ ‘성별하다’인데, 그 뜻을 잘 나타내는 칭호가 ‘하나님이 거룩하시다’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칭호는 성경에서 72번이나 나오는데, 구약에서 65번 그리고 신약에서 7번이다. 이렇게 많이 표현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피조물과 다르므로 피조물과 공존하실 수 없다. 그 말은 인간을 포함해서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거기에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서 죄악까지 범했기에 더더군다나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없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을 처도 절대로 나아갈 수 없다. 

그 사실을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렇게 확인하셨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2) 얼마나 절망적인 인간의 모습인가!

하나님은 그처럼 절망적인 인간을 그래도 사랑하셨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 사랑은 필연적으로 자격이 없는데도 주어지는 무조건적인 사랑이어야 한다. 그 사랑이 바로 저 유명한 아가페 사랑이다. 그 사랑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묘사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물론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이 아니라 실제적이다. 그 실제적인 사랑을 사도 요한은 그 다음 구절에서 분명히 밝혔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9) 하나님은 자격 없는 인간의 죄악을 씻어주시고, 그 결과 하나님에게 나아올 수 있도록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희생시키셨다는 뜻이다. 

그렇게 피조물이며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놓으신 것이다. 누구든지 그의 죄를 고백하고 그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분을 통해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이제 거룩과 사랑이 관계를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에서 사랑이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하다고 여기는데, 그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가페는 자격 없는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사랑이다. 그렇다면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거룩과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에서 거룩이 먼저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아가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을 밑바탕에 깔지 않는 기독교의 사랑은 얄팍한 감상주의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어쩌면 오랫동안 거룩을 제쳐놓고 사랑을 강조했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많은 능력을 상실했는지도 모른다. 

거룩은 다른 말로는 성결이다! 
이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성결교회가 성결의 깃발을 높이 들고 거룩을 강조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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