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소복이 내린 눈을 이른 새벽에 만나면 반갑고 따스한 마음이 듭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내 몫의 눈을 치우고 날이 밝기를 기다립니다. 외투 단단히 입고 산책을 나섭니다.

새로울 것이 없는 길인데 눈만 내리면 낯설게 보입니다. 집들을 지나 산 들머리에 이르러 숨을 고르고 오솔길로 들어섭니다. 뽀드득거림이 발끝을 타고 오릅니다. 아무도 없는 눈길을 걸을 때면 묘한 즐거움을 느낍니다. 

분명 누군가가 만들어준 길인데, 마치 내가 처음 길을 만드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착각도 금세 경이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길을 나선 이가 있었네요. 여기저기 발자국들이 길을 메워놓았습니다. 내가 아는 산짐승이라야 고라니 멧돼지 정도인데, 이건 토끼 발자국 같기도 하고, 청설모 발자국 같기도 하고, 족제비 발자국 같기도 하네요.

머릿속으로 이 길을 걸어갔을 짐승들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이 추운 겨울에 산속 동물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궁금해하다가, 싱긋 웃음이 저절로 나옵니다. 내가 걱정 안 해도 잘 살고 있었네요. 발자국들이 이야기하네요.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시니까, 부족함이 없다네요. 하나님은 나도 모르게 이 많은 동물을 먹여 살리고 계셨군요! 내가 잠든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군요! 하나님은 나보다 앞서 행하고 계셨군요!

나는 다만 그 사실에 놀라고 당황하며 감탄할 뿐입니다. 그 놀람과 당황과 감탄 속에 일상은 기적으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능력이 나를 감싸, 나는 그 놀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바르트는 ‘놀람’(Verwunderung)은 ‘기적’(Wunder)으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신학을 시작하게 된 사람은 첫걸음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기적과 관계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놀라운 일을 일상 안에서 새롭게 깨닫게 됨은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는 기쁨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모든 기적중의 기적은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무한하도록 경이로우신 하나님이 작고 작은 내 삶 속에 들어오셨다니, 나는 하나님의 기적과 관계를 맺은 셈이고, 나는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놀라움에 사로잡힌 인간이 되었습니다.

내가 부끄럽고 초라해도, 하나님의 선한 능력 안에 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적의 현실성과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요, 감사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코로나19 여파로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처음 겪어보는 집단적 적대심에 교회는 당혹해합니다.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하는 낯섦이 아직 어색하고 불안합니다. 변화에 대한 강요로 교회는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강추위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능력으로 자녀들을 감싸 안으십니다. 임마누엘! 주님은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은 교회를 돌보시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위로하십니다. 세상은 하나님과의 화해가 필요하고, 수수께끼 같은 하나님의 긍휼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희망은 여전히 주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방탕하고 반역하는 인간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긍정하시고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로서 아버지의 뜻대로 하나님 나라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순종과 일하심, 삶과 죽음 안에서 보여주신 생명의 권능을 희생과 봉사와 사랑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있음은 감사요 기적이기에 우리의 이웃도 감사와 기적을 만나도록 도와야 합니다. 본회퍼의 말대로, 교회는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 비로소 교회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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